내 뱃속에 또 다른 생명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으슬 으슬 한 게 몸살이 왔나 보다. 아기를 생각해서 약을 먹을 수도 없다.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면서 몸을 녹여본다.
"엄마, 몸살이 왔나 봐요. 몸이 으슬으슬해요."
"감기약을 함부로 먹을 수도 없잖아. 조금 더 누워서 쉬어봐."
"네, 그럴게요."
"준기에게 말은 했어?"
"아니요, 아직요."
"어떻게 할 건데? 그 아이를 낳을 거야?"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를 이제 졸업했는데, 아기 낳고 어떻게 살 거야?"
"모르겠어요."
"네 남자 친구도 마땅한 직장도 없다면서?"
"네,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몸이 아픈 것보다 엄마의 차가운 말들이 내 마음을 더 찌른다. 엄마 입장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지금 나의 입장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엄마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쉬었다가 몸살이 잦아들면 오빠에게 전화를 하기로 한다.
오빠는 그동안 나에게 연락 한 번 없었다.
따르릉
"여보세요, 나야."
"응,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왜 이리 그동안 연락이 없었어?"
"응.. 응 조금 바쁜 일이 있었어."
"그랬구나, 나 몸살 때문에 많이 아팠다가 이제 겨우 괜찮아졌어."
"그랬어? 힘들었겠네."
"오빠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
"그.. 그래 나 좀 바쁜데..."
"어! 잠깐만"
전화를 급히 끊으려는 오빠를 붙잡아본다.
"나, 임신했어."
"뭐? 임신?"
"응, 벌써 한 달 됐대."
"그래?"
"뭐, 반응이 그래?"
"아니,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서 당황해서 그렇지."
"임신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봤어?"
"응,... 그래서 그 아기 낳으려고?"
"그럼 지워?"
"응, 아기 지워."
"뭐? 지우라고? 그게 말이 돼?"
"너는 피임 안 했어?"
"그건 무슨 소리야? 오빠도 안 했잖아."
"어! 누가 나 부른다. 급한가 봐. 끊어봐. 내가 나중에 할게."
뚜.. 뚜.. 뚜..
그 전화 통화가 오빠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사랑인 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나도 많이 그를 사랑했다. 그가 돈도 직장도 없는 사람이었어도 그냥 조건 없이 좋아했다.
전화를 여러 번 다시 시도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을 한다. 아기를 지우러 병원을 가야 하나? 혼자 낳아서 키워야 하나? 나도 돈이 없는데 직장도 없는데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울까? 아빠 없이 아이를 나 혼자서 키울 수 있을까? 이 와중에 오빠가 보고 싶다.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 이 아이 낳아서 혼자 키우려고요."
"네 남자친구는?"
"지우래요."
"..."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아이고, 어쩌려고 그래하시면서 나의 등을 계속 내리치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그저 눈물만 흐른다. 아이를 지우려니 무섭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지우기 싫기도 하다. 낳아서 키우려니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섭고 엄마, 아빠에게도 미안하다. 혼자 키울 자신도 없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고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