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어느 봄날에

나는 결혼을 했습니다.

by 오그레스

매주 미사를 드리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식을 하는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꽃잎이 휘날리는 봄날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햇살을 쬐고 있으면 나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하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 1년 전에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다방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친구들과 걸어 들어왔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남편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아니 몇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친구들과 함께 나와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왔습니다.

"저기요, 우리 인원수가 잘 맞는 것 같은데 같이 앉아서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요?"

나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저 대신 활발한 성격인 제 친구 명순이가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네요, 앉으셔도 돼요."

"고맙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데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그 남자. 이렇게 단 둘이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죠.

남편은 저보다 4살 많은 오빠였습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성실해 보였고 저에게 자상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남편의 재치와 유머에 웃는 날도 늘어났습니다.

집에서는 장녀로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병아리 장사를 하시는 엄마를 도와야 했고 동생들 도시락도 싸서 챙겨줘야 했습니다.


남편을 만나는 날은 즐거웠습니다. 장녀가 해야 할 의무적인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만 보내면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하루 이틀 만나는 날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서는 첫아기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 태어났다고 구박받고 남동생들과 차별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준다는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 사람을 많이 믿었습니다.


결혼한다고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번다고 하더니 갑자기 무슨 결혼이야?"

"결혼하고 나중에 취직해도 되잖아요."

"네가 직장에 가서 돈을 벌고 동생들에게 보탬도 되면 좋지 않겠니? 요즘에 병아리들이 번식을 잘 못해서 걱정인데"

엄마가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나도 집안 살림에 보탬을 해주고 싶어서 비서 자리에 취직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비서 자격증을 공부하는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싶었는데...

아기가 생겼습니다. 임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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