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수 없는 사진
미술치료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종이를 나눠주며 말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나는 한참 동안 빈 종이를 바라만 보았다. 행복했던 순간이… 뭐였더라.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고, 이름조차 가끔 떠오르지 않는 이 시간 속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고른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손끝이 저절로 움직였다. 물감을 집어 붓을 대자, 종이 위에는 단풍나무가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깔깔 웃는 작은 아이, 내 딸의 얼굴이 번져 나왔다. 그날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떠오른 것이다. 딸이 어렸을 때 단풍놀이를 갔었다. 단풍이 붉게 물들던 어느 가을날 나와 함께 소풍을 갔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김밥을 쌌다.
도시락 안에 포도, 오렌지 과일도 넣었다. 아이가 좋아할 표정을 생각하니 도시락 싸는 것이 행복했다.
딸아이는 작은 손으로 도시락을 들고 신나 했다. 나와 함께 손을 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공원을 거닐었다.
단풍잎을 줍던 작은 손 예쁜 내 아이의 손, 내 아이의 작은 손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신이 나서 쫑알쫑알거리던 귀여운 나의 아이.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었던 나의 아이를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그 웃음소리는 내 귓가를 맴돈다.
요양원의 담당 선생님이 방으로 나를 찾아왔다.
" 며칠 전에 말씀드린 영정 사진 찍는 날이 오늘이에요. 조금 있으면 사진작가님이 도착하시니까요,
준비하시고 1층 강당으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오늘이 영정 사진 찍는 날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아직 못 했어요. 그래도 찍어야겠죠?"
"네, 작가님이 봉사해 주신다는 날이어서요. 힘들게 모셨거든요. 내려오세요."
나는 화장대의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너무나 낯설다.
딸아이와 함께 갔던 단풍놀이 그림이 거울에 붙어있다.
딸아이가 나를 웃으면서 바라보는 듯 보인다. 그림을 떼어서 안아보았다.
붉게 물든 단풍 아래 웃고 있는 우리 모녀. 속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얘야, 엄마를 기억한다면, 아팠던 내가 아니라 함께 웃던 그 순간으로 기억해 다오.”
딸도 그날의 엄마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딸이 그날의 나를 기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