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에어컨 바람 그리고 맥주 한 캔

어느 더운 여름날,

by 오그레스


지겹다 지겨워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덥다. 비라도 내릴 듯한 오후지만 퇴근하는 시간에도 비는 내리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날씨는 시원해지겠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 없이 거닌다는 것은 나를 두렵게 만든다.


잠시 걱정을 접어두고 내장이 터질 듯한 퇴근길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땀 냄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식은땀 냄새가 옷깃을 타고 코를 찌르는다.

4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힘겹게 계단을 올라간다. 이렇게 덥고 불쾌한 날씨에도 계단을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땀이 흐르지 않게 천천히 느리게 걸어간다.

땀을 흘리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 되지만 불쾌한 기분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겹쳐지면 짜증이 증가할 것이란 걸 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뛰어갈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천천히 터널 터널 걸어서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간다. 에어컨 바람이 부는 편의점으로 들어서니 왠지 나가기가 싫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기 시작한다. 신제품인지 못 보던 소시지와 핫바도 있고 다양한 맛으로 변신한 바나나 우유 시리즈도 있다. 다음 날 구운 계란을 아침에 먹을까 하고 집었다가 다시 놓기를 반복한다.

컵라면도 구경하고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도 사려다가 포기한다. 초콜릿 먹다가 이가 썩어서 치과에 가기라도 한다면 돈이 많이 지출될 것을 알기에 원인 제공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제는 병원비가 먼저 떠오른다.

십 대 때에는 그런 걱정도 하지 않고 초콜릿이 좋아서 용돈만 생기면 초콜릿을 사서 먹었다. 대학생 때는 김밥 한 줄에 초콜릿 우유 마시는 재미로 매일 학교 매점을 들락 거렸다.

잠시 추억을 소환하고 고민도 하지 않고 맥주 한 캔과 감자칩을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간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향한다. 환경오염 때문에 비닐봉지를 주지 않으므로 그냥 두 손으로 들고 다시 습한 기운이 가득한 길거리로 나간다.


몇 분 걷지 않아 가까운 곳에 집이 있다.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고요하고 아무 말이 없는 집안이 낯설다. 집에 들어가서 신발을 벗자마자 폰으로 유튜브를 틀어 놓는다. 팟캐스트나 노래나 아무 소리나 괜찮다. 누군가의 목소리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음악이든 낯선 사람의 수다든, 아무 말이나 좋다. 그 공허함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소리라는 것을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면서 냉장고에 잠시 넣어둔 작은 맥주 캔 하나를 연다.

내일이 토요일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맥주 한 캔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보려고 한다. 날이 더워서 입맛도 없다. 식사 대신 맥주와 감자칩을 먹고 일찍 자고 싶다. 맥주를 반쯤 마실 때 눈도 반쯤 감긴다.

피곤하다. 맥주를 마시니 피로가 더 빨리 몰려오는 기분이다. 요즘에는 매일매일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더 피곤하고 지친다. 치우는 것도 양치질하는 것도 모든 것이 귀찮아서 바닥에 잠시 누워본다.


5분 정도만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일어나기로 한다. 다시 눈을 뜨고 폰 시간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일어나게 되었다. 정말 5분 잔 것 같았는데 벌써 새벽 1시 30분이 넘어간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짧게 잔 것 같이 느껴진 그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긴 꿈들을 꾸었다.

꿈속에서 조차 나는 지쳐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