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독박육아
밤 늦게 양수가 터져서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신호가 계속 울렸지만 그는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는 전화기 전원을 차단했다.
혼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서워서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던 거였다.
전화기를 차단 하는 그를 더이상 기다릴수가 없었다.
무서웠던 마음이 짜증으로 변하고 혼자 택시를 타고 가기로 결심한다. 택시를 부르는데 현금이 없다.
아쉬운데로 카드 한 장만 들고 나선다. 예정일이 한 참 뒤라서 출산 가방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거의 빈 손으로 택시를 타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그렇게 아기를 혼자 낳았다.
아기가 태어났고, 그는 여전히 그대로인 생활을 했다.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퇴근 후 곧장 집에 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회식, 모임, 약속이라는 단어가 그의 일상처럼 따라붙었다.
저녁이 되면 아이와 함께 거실 베란다에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아빠를 기다렸다.
베란다에서 주차장이 보이기 때문에 아빠가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
아이는 베란다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문이 열릴까, 발소리가 들릴까, 초인종이 울릴까.
아이의 눈이 졸음으로 흐려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렸다.
퇴근 길에 손에 봉지를 하나 씩 들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남편의 작은 배려심과 자상함을 상상해보았다.
그러다 아이는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조심스럽게 불을 끄고, 혼자 남은 밤을 또 견뎠다. 육아가 이렇게 외로운 줄 몰랐다.
결혼 생활이 이렇게 외로운 건지 몰랐다.
모성애, 그 모성애 때문에 누군가에게 아기를 맡기고 내 시간을 보내면서 쉴 틈이 없었다.
아이는 내가 울면 따라서 울었고, 내가 아프면 더 많이 울었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없었다. 심지어 아기띠를 하고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어떤 날은 아기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가야 했는데, 그는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결국 열 번째쯤에서야 전화가 꺼져 있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나는 배우자를 ‘함께하는 사람’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지만, 아빠 같지 않았다.
남편이지만, 남편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루하루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