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의라 생각하고 배푸는 일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기호 단편소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이 담론을 가장 쉽고 명징하게 그려낸 듯 하다.
권순찬은 아파트 단지에서 1인 시위를 한다. “103동 502호 김석만씨는 내가 입금한 돈 700만원을 돌려주시오!” 라는 문구가 적힌 합판을 들고 온종일 천막 아래에 서있다. 권순찬의 어머니가 빚진 사채돈을 받아낸 김석만은 이를 권순찬에게 알리지 않고, 권순찬에게 700만원을 또 받았다. 즉 이중으로 돈을 뜯어낸 것이다. 하지만 103동 502호에는 김석만이 없었고, 김석만의 늙은 어머니 홀로 살고있었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사실은 답답하게 여긴) 입주민들은 자기들끼리 모금을 하여 권순찬에게 700만원을 준다. 하지만 여기서 권순찬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자신은 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입주민들의 호의를 거절해버린다. 사실 권순찬은 돈을 원한 것이 아닌, 김석만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권순찬의 소문은 급격히 나빠진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권순찬이 700만원의 이자를 받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선의의 탈을 쓴 위선은 거절당했을 때 본색을 들어내니까. 사실 입주민들의 선의는 미묘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있다. 700만원을 모아 권순찬에게 내밀며 아파트 질서를 어지럽히는 권순찬을 치워버리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가 담긴 가짜 선의가 거절당하는 순간, 입주민들은 권순찬을 매도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선의는 과연 선의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가 수도 없이 베푸는 선의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권순찬을 둘러싼 입주민들을 착한 사람들이라 칭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