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일종의 번역입니다.

김성중-상속

by 심봉사

소설은 초반부터 주제를 암시하는 말을 던진다. “책들의 빈자리가 드러날 때 마다 인생이 정리되는 실감이 든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채워질 진영의 책장을 상상했다.” 기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진영에게 책을 넘겨주기로 한다. 그리고 책은 죽은 선생님이 남긴 책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에게 ‘상속'이라는 개념을 연상케 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두가지 방식의 상속이 나타났다고 해석했다. 또한 두가지 방식 모두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번째 방식의 상속이다. 죽은 문학아카데미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한다. “소설은 일종의 번역입니다. 나의 인식이 더해진 세계에 대한 번역.” 이 문장은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에게 상속되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인식"이 더해진다는 것은, 그 문학을 쓰는 개인으로써의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이 더해지는 것과 같다. 즉, 소설은 읽는 이에게, 작가의 생각과 경험을 상속시키는 것 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은 읽는 이의 생각 또한 기록이 되어 꾸준히 상속된다. 이는 책들에 담긴 선생님의 메모에, 기주의 메모가 더해져, 진영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나. 또한, 이러한 문학적 상속은 인간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이는 진영의 꿈을 통해서 나타난다. 기주는 꿈 속에서 성공하지 못한 소설의 잔해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다시 소설을 쓰기 위해 일어난다. 진영은 습작생들의 “번역"즉 그들의 인식들을 상속받음으로서 다시 소설을 쓸 힘을 얻은 것이다.


두번째 방식의 상속은, 바로 순간의 상속이다. 주인공 기주는 선생님과 여름 내내 함께한 8주짜리 강의를 인생의 화양연화 처럼 여긴다. 이는 “지금 내가 가져가고 싶은 단 한권의 책은 그 여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설명된다. 나는 8주간의 강의라는 그 시간과 순간 자체가, 기주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상속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주는 그 유산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이러한 순간의 상속도 문학의 상속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가 상속받은 유산들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속 “행복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발붙인 세상이 깜깜하고 막막하며, 비애와 절망으로 가득 차있다고 느껴질 지라도,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도 알지 못한 채, 혹은 기억 속에서 잊어버린 유산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리하자면, 문학이 상속되는 것과 인간의 삶 속 특정한 순간이 상속되는 것은,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효과를 지니며, 우리는 분명 무엇인가를 상속받았고, 그 유산으로 인해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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