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김중혁-악기들의 도서관

by 심봉사

인간의 죄책감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고통엔 끝 이 없는 것일까 하고 내내 생각해왔다. 막힌 수도관 처 럼 헐떡이며 살아왔다. 나는 어떠한 고통의 끝까지 가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그런 깊은 소설을 쓰고 싶었 다.


소설에 해피엔딩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결핍을 가진 인 물이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아등바등 움직이다가 더 큰 고통에 빠져버리는 이야기, 혹은 기존의 결핍은 해소 했지만 내면적으로 파멸해버리는 이야기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틀에 박힌 생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해결되는 고통은 절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몇몇 소설은 내 고착된 생각 사이로 기어코 밀 고들어왔다. 하나는 천운영 작가의 〈소년 J의 말끔한 허 벅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 이야기 할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인물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자체로 헬멧처럼 그의 머리를 감싸 안는다. 사고 이후 알콜중독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기존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악기점에서 일한다. 그리고 여러 악기들의 소리를 녹음하며 자신의 공허를 채우고, 악기점을 자신만의 소리 도서관으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예전에 습작으로 쓴 짧은 소설과도 결이 비슷했 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소리채집가는 작업실에서 기 록된 아내의 소리만을 듣고, 더이상의 예술 활동을 하 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작업실에 홍수가 들이닥치고 모든 녹음파일들이 날아가버린다. 그때 소리채집가는 물바다가 된 작업실의 소리를 녹음한다. 모든 것이 지워진 상태에서 다시금 생이 시작된다는 주제를 가지고 쓴 소설이다. 악기들의 도서관도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을 강제로 떨쳐버린 인물 앞에 악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소리가 인물의 공허를 조금씩 매꿔나간다. 비워진 상태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된다.


내겐 소설이 그런 것 같다.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존재 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 며 살아갈 때, 그 공백에 여러 소설들이 스며들었다. 때문에 소설이란 내게 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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