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이 도착하는 날들

살만한 세상

by 순간수집가

엄마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의 조각을 기록하고,
엄마의 독서와 여행 시간을 나누고 싶어서 만든 작은 앨범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뜻밖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곡성에서 무려 책 18권이 도착했다.
상자 가득 종이 냄새와 정성이 함께 실려 있었다.
“책을 읽는 모습이 존경스럽네요.”
그분의 메시지와 함께.

엄마는 상자를 열자마자
“모두 다 안 읽은 책이네!”
하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또 어떤 날엔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직접 쓴 책을 친필 사인과 함께 보내주었다.
유방암을 겪으며 일어난 이야기를
담담한 문장들로 적어내린,
환우들에게 희망이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다시 아홉 권의 책이 도착했다.
며칠 뒤 그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같이 보내려고 했는데 깜빡했어요.
이 도라지청도 받아주세요.”

고마운 마음에 뭔가 답례를 하려 해도
극구 사양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따스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한 번 더 보내오는 정성에
나는 깊게 감동했다.

나는 요즘 문득문득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이 작은 채널이
어떤 길을 내고,
어떤 마음들을 연결했길래
낯선 곳에서 이렇게 많은 사랑이 도착하고 있을까?

SNS는 때때로 피곤하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중에서도
‘순한 길’만 골라 걸어온 것 같다.
엄마의 환한 모습,
책을 읽는 마음,
여행을 즐기는 눈빛—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살 만하고,
좋은 사람들은 여전히 많구나.

책 한 권이 건네준 마음이
책 여러 권으로 되돌아왔고,
그 인연들이 겹겹이 쌓여
엄마와 나의 일상은 조금 더 따뜻해졌다.

고맙다.
우리가 스쳐 지나간 마음들이
이렇게 돌아오는 날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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