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도 도시락 챙기는 엄마

86세 엄마의 독서

by 순간수집가

새벽 세 시,
세상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엄마의 방에만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엄마는 또 책을 펼쳤다.

86세 울엄마
누군가는 자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겠지만
엄마에게는 글자가 하루를 만드는
또 다른 보물 같은 시간이다.

엄마가 며칠째 붙들고 있는 책,
621쪽 소설 『그녀를 지키다』.
두툼하고 묵직한 그 이야기를
엄마는 마지막 장까지 밀어붙였고
결국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져서야
책을 덮고 잠에 들었다.

그 날 아침
엄마는 조금 늦게 방에서 나오셨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을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엄마, 다 읽었어?”
내 물음에
엄마는 소녀 같은 얼굴로
“응, 너무 재미났어.”
하고 대답하신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바로 주방으로 가
딸의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한다.

새벽 내내 책을 읽고
다섯 시에 잠들었으면서도
아침이 되면
엄마의 하루는
늘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흐른다.

나는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엄마 옆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책 내용,
어제의 일상,
오늘의 날씨 같은
아무렇지 않은 대화들.

하지만 이런 작은 대화들이
내 삶에서는
가장 깊고 따뜻한 장면이 된다.
아무 특별한 계획도 없는데
특별한 하루가 되는 순간들.

언젠가는
이 새벽 독서도,
늦잠도,
도시락 준비도,
이런 우리가 나눈 짧은 대화도
모두 다시 그리워질 날이 오겠지.

그래서
오늘의 풍경을
조용히 가슴에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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