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낭독의 발견
강호시조 제11집 출판기념회는
‘비로소시’라는 이름의 작은 일식집에서 열렸다.
이름처럼 고요하면서도 반짝이는 공간이었다.
강호시조는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소중한 문학 모임이다.
회원들만 참석한 가족 같은 자리,
낭독과 웃음이 조용히 섞여 흐르는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 엄마는 특별히 초대받았다.
얼마 전
엄마는 강호시조 회장 한재성 시인의 시집 두 권을
너무 재미있다며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하시면서
몇 편을 또박또박 내게 읽어주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시인이 마주한 순간,
한재성 시인은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식구를 만난 듯
엄마를 환하게 맞이했다.
“어머님,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노래 한 곡을 불러드리고 싶다며
예전 노래 ‘산골소년’을
즉석에서 ‘산골소녀’로 바꾸어
엄마를 향해 불러드렸다.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귀 기울여 듣다가
국화처럼 환하게 웃으며 큰 박수를 쳤다.
그 순간의 엄마는
참 행복해 보였다.
식사가 끝나고
각자의 시조를 한 편씩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조금 긴장한 채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자가
내 시조〈꽃놀이〉를
엄마가 낭독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안경도 안 가져왔는데…” 하시며
수줍게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담아 쓴 내 시를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떨렸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엄마의 숨결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마지막 행을 읽고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눈물을 들킬세라 시선을 피했다.
그 자리에 머문 온기,
엄마의 떨리는 숨결,
스쳐가는 아버지의 모습…
엄마와 함께였기에
더욱 빛났던 하루였다.
그리고 분명히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시처럼 되살아날 날일 것이다.
꽃놀이
즐거움 잃어버린 무표정한 아버지
엄마랑 궁리 끝에 준비한 화투놀이
진통제 한 알 삼키고 전투자세 임한다
동전을 나누어서 방석에 앉아본다
승부욕 발동하니 낯 붉어진 아버지
기다린 이쁜 꽃그림 안주나며 불호령
엄마와 눈빛 교차 신호를 주고 받고
엄마는 졸립다고 아들은 출근 핑계
서둘러 끝낸 꽃놀이 다시 못 갈 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