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줄거움은?
여섯명의 친구들이 함께
12월인데 가을 느낌의 섬,
가고시마에 도착한 지 이틀째 밤,
우리는 아무 계획 없이 걷기만 해도 좋았다.
낯선 거리였지만 낯설지 않게,
바람이 이끄는 대로 발길을 맡겼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커피숍에서는
커피 향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마셔도 좋고,
사소한 이야기에도 터지는 웃음,
걸리는 부분 하나 없는 시간들.
정오에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성당에서 친절한 분을 만났는데,
한국인 신부님을 연결해 주어서 친구가
통화를 하기도 했다.
서로의 종교를 떠나서 조용히 앉아서
각자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성스러운 기운에 마음까지 따뜻해 지는 시간
감사의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까운 마트에 들러 간단한 먹을거리와
사케 한 병을 사왔다.
바다는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숨 쉬고,
창밖엔 사쿠라지마가 밤의 무게를 이고 서 있었다.
우린 테이블에 사케잔을 놓고
조용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갑자기 장난스럽게 가고시마 사행시를 지어보기도 했다.
즉흥적인 제안인데 재치있고, 개성있는 내용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단순한 놀이가 이상하게 기쁘고,
낯선 도시에서 만난 우리끼리의 작은 축제 같았다.
그리고 오늘 제일 좋았던 순간은,
이덕무의 『최상의 즐거움』 한 문장을
서로 외워 함께 낭독한 시간이었다.
낭독은 짧았지만 마음에 오래 앉았다.
조용한 숙소 한켠에서
지식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더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가고시마의 여행은 우리를 느리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어떤 대단한 곳을 가지 않아도
좋아지는 시간.
걸음만으로 충분하고
커피 한 잔으로도 따뜻하며
사케 한 모금으로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오늘 같은 밤이
여행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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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즐거움] - 이덕무 -
마음에 드는 계절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드는 글을 읽으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얼마나 드문지
일생을 통틀어 몇 번이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