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지트
며칠 전 엄마 집 근처
‘상상이상’이라는 작은 독립서점에 들렀다.
책을 기부받아 청소년 들에게
다시 선순환시키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했다.
나는 고르고 골라서 챙겨간 다섯 권의 책을
조용히 내려두었다.
무인서점이라 긴 인사 대신
짧은 메모 한 줄 남기고 나왔다.
책이 또 다른 손으로 건너가
새 이야기를 시작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곳에는 계단을 오르면 혼자만의
다락방이 되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 꽂혀있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엄마는 마실 가실 것 같다.
근처 보리밥집으로
소풍 친구가 점심을 초대했다.
소하 친구도 함께 넷이 둘러앉아
소박한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다시 서점에 들러
캡슐커피 값을 계좌이체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눈 뒤
각자의 하루로 흩어졌다.
저녁 무렵
택배 상자를 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대패삼겹살 김치찌개의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겼다.
“힘들었지?.”
엄마는 늘 그렇듯
밥을 해두고 나를 기다렸다.
택배 상자 안에는
서울에서 이어진 스레드 인연이 보낸 선물.
필사책 세 권,
연필 두 자루, 작은 연필깎이, 지우개,
그리고 손편지.
“어머님이 기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책을 한 권씩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미니 연필깎이로
엄마의 색연필을 하나씩 깎아 드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괜히 더 정성스레 돌렸다.
연필이 가지런해지자
엄마는 윤동주의 〈서시〉를
정성껏 필사하기 시작했다.
또 민요 가사를 넘겨보다가
아는 곡이 나오면
엄마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작게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그때 엄마 얼굴에 번진
흐뭇한 미소.
연필 끝이 뾰족해질수록
내 마음도 조용히 방향을 찾았다.
내가 엄마 곁에 있고
엄마가 책 곁에 있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로
오늘은 이미 완성된 하루였다.
너무 감사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