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future가 그리울 뿐이지
많은 곳에서 쓰이는 밈과 같은 문장 ‘O O이었다’ 나 역시 참 자주 매계절 쓰는 중이다. 아마 저 때도 끊임없이 썼을 것. 저 문장을 모를 때 나는 이 적절한 표현을 뭐라 달리 표현했었을까?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늘어져 피크닉 다니고, 집 가는 길에 장을 보러 Kaufland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우리의 관습 같이 주류 섹션에 들러 구경만 하자는 말로 지나칠 수 없는 Rabatt을 핑계로 데킬라, 와인을 그득그득 담아 계산하고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던 저 시절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여름이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행위임에도 특히 여름과 꼭 맞는다며 그렇게 미래 없는 저녁을 보내며 스스로를 No future라 칭해 보낸 나름의 마지막 No future의 여름이 벌써 3년이 지났다니, 잠시라도 No future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한아름이다. 걱정 없이, 일과 없이 그렇게 쫓기는 거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그저 쉬고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다. 그게 꼭 의미 없는 행위는 아닐 것이니 말이다.
모든 행위가 목적과 목표의 성취를 위해 존재하고 행위하는 이 모든 일과들이 너무나 권태로워졌을 뿐이다. 그럴 때면 꺼내보기 위해 쓰는 글일 테니 조금만 더 해내보는 방법뿐이 없겠지. 이렇게 말한다 한들 목적과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여 상실했을 때는 노퓨쳐를 바라던 마음보다 더 불행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노퓨쳐라 한들, 내일의 피크닉을 위해 도넛을 샀던 걸 보면 아무래도 정말 노퓨쳐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고생스럽지 않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