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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Oct 23. 2021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1)

이렇게 호랑이에게 떡을 또 하나 줍니다.

남을 도와주고 받아온


아이들의 먹거리를 얻어오기 위해,
엄마는 아이들만 남기고 잔칫집에 일을 도와주러 갑니다.
그렇게 잔칫집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도와줬던 엄마는
잔치가 끝나고 남은 떡을 대가로 받아오게 되죠.


먼저,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오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잔칫집 일을 도와주러 갑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 손에는 떡이 한가득 있었지요.




우선  의미하는 바를 살펴볼까요.


어머니의 손에 한가득 담아오던 이 떡은 잔칫집에 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얻어온 거예요.

남을 도와주고 받아온 대가인 거죠.

그런데, 만약 엄마가 일을 도와주다 중간에 나오게 됐다면 이 떡을 받아올 수 있었을까요?

잔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면,

결코 받아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떡을 받아왔다는 것은,

잔치가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일을 도와주고 왔기 때문에

잔치가 끝난 후 남은 떡을 받아올 수 있었던 거죠.


떡은 바로 () 의미합니다.

남을 도와주며 쌓인 덕(복록)을 의미하는 거죠.

남을 도와주더라도 도와주다 중단한 선행이 아닌,

일이 끝날 때까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며 도와준 선행이

이 떡(덕, 德)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죠.


떡이 소진될 때까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호랑이

그렇게 덕을 베풀고 받아온 떡을 짊어지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고개를 건넙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호랑이를 만나고 맙니다.
엄마를 만난 호랑이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과연 호랑이가 떡을 먹는 동물인가요?

호랑이는 떡을 먹는 동물이 아니지요.

그런데 떡을 달라하고 뺏어 먹습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동물인 호랑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무서움에 벌벌 떨던 엄마가 떡을 하나 건네줍니다.
떡을 받아먹은 호랑이는 순순히 물러납니다.

엄마가 또 고개를 넘어갑니다.
또다시 나타난 호랑이가 이야기합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번에도 엄마는 떡을 건네줍니다.
떡을 받아먹은 호랑이는 다시 물러가죠.
다음 고개를 넘으니 또 호랑이가 떡을 달라고 나타납니다.

이렇게 호랑이는 그 떡이 다 소진될 때까지 엄마를 찾아오게 되죠.
더 이상 줄 떡이 소진된 엄마를 호랑이는 결국 잡아먹게 됩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가 이 떡을 계속 뺏어 먹으러 오는 이유는,

내가 지어온 선행을 갉아먹어 없애기 위해 오는 거예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꼴도 보기 싫어요.
친구에게 가서 그 사람 험담을 합니다.
“그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이 세상에 나에게…”

 

이렇게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 건네줍니다.


가족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과 행동을 해요.
참다 참다 나도 같이 폭발을 합니다.
치고받고 싸우든, 말로 싸우든 감정싸움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호랑이에게 떡을 또 하나 줍니다.

또 호랑이가 떡을 뺏어먹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둔갑해 찾아오죠.


어떤 사람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해서 합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 왜 저래?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하는데. 저 사람 좀 이상해.”
이렇게 속으로 그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렇게 또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 주고 맙니다.


친구에게 자그마한 실수를 했어요.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친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떡을 또 뺏어먹은 호랑이가

죄책감에 시달려하는 나를 보며 비웃습니다.


이렇듯 호랑이에게 떡을 주는 행위는 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과 관련이 있어요.


상대방을 내 기준으로 판단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나를 화나게 혹은 짜증 나게 만드는 사람과 똑같이 대치하며 싸우는 것.

미운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가서 험담하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그 감정을 풀려고 노력하지 않고 절교하는 것.

나의 자그마한 실수에 집착해 자꾸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것.

상대방을 자꾸 의심하는 것.

내 고집을 피운다고 상대방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 등등


티인과의 감정싸움으로 상극을 저지르는 모든 생각과 행동과 말들.


호랑이에게 떡을 주는 행위는, 우리 일상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죠. 평소에 내가 지어온 복록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나 자신이 호랑이의 밥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게 우리가 선행을 끊임없이 베풀어 덕을 항상 차곡차곡 쌓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면 말이죠.


호랑이에게 먹히지 않는 방법 2가지.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행과 복록을 끊임없이 쌓아가는 겁니다. 호랑이에게 떡을 계속 주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복록을 쌓아 떡 바구니에 떡을 주기적으로 채운다면 떡이 떨어질 일이 없겠지요. 쌓인 복록이 떨어지는 순간이 와 호랑이에게 먹히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선행과 복록을 쌓을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돈이나 물질이 많은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물질로 베풀 수 있죠. 실제로 부자가 된 이유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베풀며 살아라고 부자가 된답니다.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본능이 일어나게 되죠. 결국 그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내가 충분한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베푸는 것이 복록을 쌓는 일이 될 수 있어요.


남에게 베풀기에는 물질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 언행의 선행을 베푸는 것도 복록을 쌓는 일입니다. 돈 들이지 않고 복록을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지요.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

아주 마음 따뜻해지는 상생의 칭찬과 말,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세요.


이왕이면,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언덕(言德)도 좋지만,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줘라 하듯이, 나를 힘들게 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언덕을 베푸는 일이 좀 더 큰 덕이 되어 돌아올 수 있겠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걸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아요.

그러나 미운 사람은 10원 한 푼 내 돈이 더 들어가는 게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죠. 미운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선행과 복록을 끊임없이 쌓아도 호랑이가 지속적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에게 따뜻한 칭찬 한 마디, 따뜻한 포옹 한 마디,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노력.

이것이 시간이 지나 추후에 호랑이가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게 만드는 진짜 핵심적인 비결입니다.

왜, 선조들께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라."라고 하셨겠어요.


두 번째 방법은,


그 어떠한 일이 닥쳐도 상대방과 감정싸움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방법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한번, 두 번, 나를 조금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최고 성품 중 하나인 ‘어질 인(仁)’과 상대방을 존중하여 대할 줄 아는 성품의 “예(禮)’의 성품을 발휘하여 습관화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다만, 이렇게 습관을 들이기까지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겠지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선물을 사 왔어요.
그런데 제가 그 선물을 받지 않아요.
그럼 그 선물은 누구 것이 될까요?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선물을 주려고 했던 사람이 다시 가져가겠죠.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감정도 마찬가지랍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짜증과 화를 건네줍니다.
그러나 내가 그 짜증이나 화를 받지 않는다면,
결국 그 짜증과 화는 그 사람의 것이 되겠지요.


내 마음에 '짜증'이나 '화'라는 감정이 일어났다면,

이미 나는 그가 준 감정을 받은 것이에요.


방법은 상대방이 주는 감정을 내가 받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행위를 할 때, '어, 저건 내 것이 아닌데.'라며 그 감정을 받지 않으면 나에게 감정이 일어나 똑같이 감정싸움으로 죄를 짓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4, 45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예수님께서도 그 어려운 '원수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겨라'는 가르침이 성경 곳곳에 많이 언급되어 있죠.


대순전경 교법 3장 12절 

상제께서 천원(川原)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려 상제께서 가라사대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처가 완전히 나았도다.


대순전경 교법 2장 28절 

김 형렬이 출타하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수교 신자 김 중구(金重九)가 술이 만취되어 김 형렬을 붙들고 혹독하게 능욕하는지라. 형렬이 심한 곤욕을 겪고 돌아와서 상제께 사실을 아뢰니 상제께서 형렬에게 “청수를 떠 놓고 네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하시니 형렬이 명하신 대로 시행하였도다. 그 후 김 중구는 한때 병으로 인해서 사경을 헤매었다고 하느니라. 이 소식을 형렬로부터 들으시고 상제께서 다시 그에게 충고하시기를 “금후에 그런 일이 있거든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네 몸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만일 허물이 네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독기가 본처로 돌아가리라” 하셨도다.


교법 3장 12절의 내용은,

다투다가 갈비뼈를 다쳐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자에게, 상제님께서 전에 너로 인해 원한을 품은 자가 이번 싸움을 벌었던 자의 몸에 붙어 앙갚음을 한 것이니 잘못을 뉘우치고 원수를 은인과 같이 여기면 나을 것이라는 상제님의 말씀이시며,


교법 2장 28절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나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본인의 마음을 먼저 살피면 그 상해를 입힌 허물이 본처로 돌아간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청수를 떠 놓고 그대로 시행했더니, 그 허물을 지은 자에게 다시 넘어가 그 독기를 만든 장본인이 그 독기를 받는 장면이 나와있죠.


결국 모든 일을 내 마음으로 먼저 풀어라는 가르침이십니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

부처님의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모든 성인들의 인간을 귀하게 여겨라는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법이 잘 나와있는 구절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을 실천하신다면,

호랑이가 찾아오지 않게 만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두 가지 방법을 다 실천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요.


명심하실 일은.

첫 번째 선행과 복록을 끊임없이 쌓는 일은 떡을 계속 쌓아가는 행위이지만, 호랑이는 지속적으로 찾아오게 될 거예요. 호랑이가 원수라고 한다면, 그 억한 원한의 감정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한 내가 가진 떡이 다 소진될 때까지 끊임없이 찾아오게 될 테니까 말이죠.

호랑이가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원수도 은인처럼 사랑하고 베풀어야 가능하다는 것을요.

미운 사람에게 지속적인 상생을 베풀어 원한의 감정이 줄어들게 되면 더 괴롭히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가 줄어들어 언젠가는 그 현상이 없어지게 될 거예요.


이것이 우주의 진리입니다.



교법 2장 50절
 “한 고조는 소하(蕭何)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나니 너희들은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는지라. 다만 언덕(言德)을 잘 가져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가 잘 되고 그 여음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 삼가할지니라” 하셨도다.


교법 1장 16절

 세상에서 수명 복록이라 하여 수명을 복록보다 중히 여기나 복록이 적고 수명만 길면 그것보다 욕된 자가 없나니 그러므로 나는 수명보다 복록을 중히 하노니 녹이 떨어지면 죽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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