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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Oct 23. 2021

엄마의 모습으로 변장한 호랑이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2)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호랑이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엄마로 변신을 합니다.

엄마의 모습으로 변신한 호랑이가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러 왔죠.
엄마 왔다며 문을 열어주려고 하는 순간, 아이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낍니다.

“어? 엄마 목소리가 이상해요.”
“엄마 손에 털이 왜 이렇게 많아요?”

밖을 쳐다보니 분명 엄마는 맞는 것 같은데,
엄마가 아닌 듯한 수상한 느낌이 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죠.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래동화가 있어요.


전래동화 <사람으로 둔갑한 쥐>

항상 깎은 자신의 손, 발톱을 아무렇지 않게 방치하던 집주인. 그렇게 방치된 손톱을 먹은 쥐가 그 집주인으로 변장해 가족에게 나타나 그 사람의 행세를 합니다. 가족들은 누가 진짜인지 구분하기 위해, 창고의 쌀자루가 몇 개가 있는지, 집 안의 그릇이 몇 개가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집 안의 대소사에 관심이 없었던 진짜 주인은 단 한 문제도 맞히지 못하게 되고, 집안 곳곳 돌아다니며 집안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던 변장한 쥐는 모든 문제를 맞히게 되죠. 그렇게 진짜 주인이 쫓겨나게 됩니다. 쫓겨난 주인이 스님을 만나게 되고 얻어온 고양이가 그 변장한 쥐를 물어 다시 돌아가게 되고,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되는 내용의 전래동화이지요.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전하여 내려온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후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전해 주는 이야기들.

이 설화는 사람이 자신이 지닌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분별하여 방심하는 사이에 허점이 드러나,

자기 상실에 이르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충고가 담겨 있다고 하죠.


그저 설화 이야기는 허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며 일종의 미신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드라마 <구미호뎐>


드라마 <오늘의 탐점>


아무렇지도 않게 지인의 모습으로 등장해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 드라마 <구미호뎐>.


원한에 사무친 귀신이 주인공에게 슬픔과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심기 위해 죽은 동생의 모습을 환각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이 삽입된 드라마 <오늘의 탐정>.


해님달님에 등장하는 오누이도 집 앞에서 문 열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은 분명 엄마의 모습인데, 이상하게 엄마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죠.


과연,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등 이렇게 나와 친분이 있는 지인이 나를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인지, 호랑이가 둔갑해서 찾아온 건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래 성품에는 인의예지신이라는 성품이 있죠.

사람이 항상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 도리(道理).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오상(五常).


그러나,

일상 속에서 우리의 곁을 항상 머물며

우리의 감정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이 인간의 본래 품성보다 더 많이 일어나곤 하죠.


의심, 불안, 슬픔, 우울함, 서러움, 불만족스러움, 답답함, 걱정, 무기력, 절망, 긴장, 서운, 억울함, 기막힘, 아까움, 서운함, 부담스러움, 허전함, 허무함, 공허함, 고통스러움, 두려움, 창피함, 조급함, 아쉬움, 귀찮음,  거부감, 수치심, 피곤함, 비참함, 패배감, 죄책감, 소외감, 외로움, 거부감, 자괴감, 낙담, 배신감, 박탈감, 자격지심, 초조함, 무서움, 절망, 질투, 시기, 분노, 혐오, 경멸


인간의 본성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특성을 말하며, 본능은 생로병사의 길에 나를 지키기 위해 후천적으로 발생되어 생기게 된 행동 능력을 말합니다.

본능은 가르침을 받지 않았어도 아기가 어미의 젖을 빨거나, 병아리가 달걀 껍데기를 스스로 깨고 나오듯이 생존과 관련된 모든 행위와 감정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긍정적인 본능이 아닌

위와 같은 상극적인 감정이 우리 일상에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거죠.


그러나 위와 같은 상극적인 것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이 상극이 때론 필요한 순간이 있거든요.

불이 우리 일상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너무 과하면 산과 불을 집어삼킬 정도로 위협적이게 변하게 돼 죠. 이럴 때는 상극의 의미로 물이 필요합니다.


물이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귀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너무 과할 시 온 세상이 물바다로 만들어 귀한 인간의 목숨을 뺏어 가기도 해요. 이럴 땐 그 물을 제어할 흙, 제방이 필요한 것이고요.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품성이긴 하지만, 사기꾼이 다른 흑심을 품고 접근할 때에는 적당한 의심이 나에게는 필요하겠지요.


상대방이 칼을 들고 나를 헤치려거든 어떻게든 살기 위해 상극의 방패막을 나도 꺼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해요. 이렇게 때에 따라 상극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모든 만물은 때에 따라 상생이 될 수도, 상극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나,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상생보다 상극의 범람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상극이 너무나도 당연시되어 시시때때로, 너무나도 불필요하게 상극의 감정을 쓰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죠.


인의예지신의 상생 본성은 만물의 영장인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성품입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은 인간도 가지고 있지만, 짐승도 지니고 있는 성품이지요. 오로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짐승인 것이죠.

상대방이 물어뜯으려 하면 같이 물어뜯는 본능 말이지요.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본능의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도 인간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 그 본능을 짓누를 수 있는 유일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유일하게 지니고 있는 본성보다 본능에 더 충실하게 살고 있는 듯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일어나면 그걸 제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기보다 그냥 분출해 버리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고 읺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과연 나는 인간의 품성이 일상의 주가 되어 있는지,

짐승의 본능이 주를 이루고 있는지를.




해님달님 숨은 메시지 (1) 편에 살짝 소개했듯이,

떡을 뺏아먹는 호랑이에게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떡 하나 더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녀라'며 일종의 원수의 개념으로 살짝 언급하긴 했어요.


호랑이는 떡을 먹는 동물이 아니기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물의 개념은 아닌 거죠. 여기서 악당의 존재로 표현된 호랑이는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귀신, 사탄, 악마 등으로 지칭하는 존재를 호랑이로 표현한 것이에요. 이러한 존재가 나를 찾아와 나도 똑같이 죄를 짓게 만들어 쌓아 온 복록을 모조리 없애려고 하는 거죠.


우리가 소위 말하는 악마, 사탄 등은 실제로 그 집안에 원한을 품고 있고 죽어 그 원한의 마음으로 인해 저승을 가지 못하고 계속 이 땅을 맴도는 원한신 즉, ‘척신’으로 구분됩니다.

 척(㥻) :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갖는 서운한 마음이나 원한(怨恨)을 이르는 말. 척은 오래전부터 쓰이던 말로 ‘척지다’라고 하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다’라는 의미로, 또한 ‘척짓다’라고 하면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을 만들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척신(慼神) : 누군가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된 사람이 원한을 풀지 못한 채 죽어서 된 원혼


나 혹은 우리 집안에 원한에 맺혀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악에 받쳐 나를 수시로 찾아와 상극을 지속적으로 행하게 되는데, 거기에 나도 똑같이 상극의 행위인 ‘악마니 사탄이니’라고 칭한다면, 안 그래도 맺혀 있는 억한 심정으로 화가 가득한데 그 원한은 배가 되어 더 커지지 않을까요?


드라마 <오늘의 탐정>

드라마 <오늘의 탐정>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에 신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이 방영이 되고 있죠.

그중에서 이런 호랑이와 같은 존재를 아주 잘 표현한 드라마가 있어요. 바로 2018년에 방영했던 <오늘의 탐정>이라는 드라마예요.

이 드라마는 이 호랑이와 같은 원한 품은 신 즉, 척신의 존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정말 잘 표현한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등장인물 중에 원한에 맺혀 지박령이 된 선우혜의 역할을 맡은 배우 이지아가 등장하죠.

아주 예쁜 얼굴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처녀귀신의 역할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요.


일생을 살아가며 억울하게 맺힌 원한의 감정을 풀지 못하고 죽어 원혼으로 떠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버리죠.

풀지 못한 죄책감을 건드려 자살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화를 분출시켜 타인에게 살인을 저지르게도 하고,

슬픔을 건드려 지옥의 마음에 살게 하는 등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우리의 마음이 평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똑같이 본인과 같은 고통에 시달리며 상극을 저지르고 죽음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그중 '엄마로 변신한 호랑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그 사람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이용해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환각과 환청을 일으키게 만들죠.


드라마 <오늘의 탐정> 중,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죄책감을 건드리는 장면


이렇듯 호랑이가 나로 둔갑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대순전경 교법 3장 1절 

상제께서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행록 3장 44절

天用雨露之薄則必有萬方之怨
地用水土之薄則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天用雨露之薄則必有萬方之怨

(천용우로지박칙필유만방지원)

地用水土之薄則必有萬物之怨

(지용수토지박즉필유만물지원)

人用德化之薄則必有萬事之怨

(인용덕화지박즉필유만사지원)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

(천용지용인용통재어심)

 

하늘이 비와 이슬을 박하게 베풀면 반드시 만방에 원이 있게 되며

땅이 물과 흙을 박하게 베풀면 반드시 만물에 원이 있게 되고

사람이 덕화를 박하게 베풀면 반드시 만사에 원이 있게 된다

천지인의 베풂이 모두 마음에 있는 것이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심야자귀신지추기야문호야도로야)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개폐추기출입문호왕래도로신)

或有善或有惡

(혹유선혹유악)

善者師之惡者改之

(선자사지악자개지)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오심지추기문호도로대어천지)


마음은 귀신의 중요기관이고, 문호이며, 도로이다.

추기를 열고 닫고 문호를 출입하며 도로를 왕래하는 신이 있는데,

 혹은 선하고 혹은 악하기도 하니라.

선한 것은 스승으로 본받고 악한 것은 고쳐야 한다.

추기요, 문호요, 도로인 나의 마음은 천지보다 크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심야자귀신지추기야문호야도로야) : 마음은 귀신의 중요기관이고, 문호이며, 도로이다. 여기서 인간의 마음은 귀신과 신명이 들고 나오는 문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선한 신이 응하기도 또는 악한 신도 응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계속 자괴감에 빠져있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살고 있거나,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등 모든 상극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호랑이는 그런 나의 마음 문을 파고들어 나를 계속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죠. 호랑이의 존재는 끊임없이 공포, 불안, 죄책감, 후회, 미움, 분노와 같은 나의 상극의 마음을  건드리게 되죠. 내 마음에 스며든 호랑이로 인해 끊임없이 나는 고통 속에 살아야 될지도 몰라요.


혹여나 나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나요?


그럼 위의 '善者師之惡者改之(선자사지악자개지)'의 문구에 잘 나와있어요. 나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사용해야 되는지에 대한 지침이 잘 나와있지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거울을 봤을 때 내 모습이 예쁘면 그대로 유지하거나 더 돋보이게 하겠지요. 반대로 얼굴에 무엇이 묻어 있거나 추한 모습이 보인다면 닦아내려 할 거고요.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면 상대방이 고쳐지기를 바라지요. 그러나 내가 그렇게 바란다고 상대방이 고쳐지던가요? 절대 내가 남을 고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내 얼굴에 묻은 것을 거울을 닦는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말이죠. 나의 고칠 점을 주변인을 통해 거울삼아 보여주는 일종의 하늘의 선물이지요. 정말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말이죠.


그렇게 나 자신을 고치지 않는다면, 계속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품게 될 것이고, 그 마음의 문을 악한 신에게 계속 열어주어 내 마음을 호랑이가 계속 쓰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겠죠. 엄마로 변신한 호랑이처럼 말이죠. 그게 결국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좀 가라앉히고, 내 마음을 먼저 바라볼까요? 내가 왜 자꾸 그 사람에게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것인지. 그렇게 내 마음을 돌보게 해주는 그 원망의 대상을 내 마음을 바라보게 해주는 멋진 스승으로 삼고 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반성해 나간다면, 그런 나의 상생의 마음의 문을 호랑이는 절대 드나들 수 없게 될 거예요.


계속 나의 마음에 호랑이가 자꾸 스며들게 두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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