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쉼
어느덧 뉴질랜드에서 귀국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피디님을 만났다.
이 피디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일하게 나의 공황장애를 아는 인물이자, 내가 막내시절 너무 힘들 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줬던 인물.
정확히 3년 만이다. 3년 만에 피디님을 본다는 생각에 설렜고, 신이 났다.
너무 신이 나서였을까? 탈이 나고 말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피디님임에도 불구하고, 대화하는데 내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왜, 왜, 하필 이때.
나는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곤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10분이란 시간이 지났을까? 그제야 내 마음은 진정이 됐다.
그리고 피디님은 내게 말했다.
"네가 뉴질랜드에 3년이란 시간을 지내면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해서 그게 나아져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지금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바로 일하려고 하지 마. 한국에 왔다고 해서 바로 한국사람들처럼 살려고 하지 마. 그냥 지금은 네가 너의 루틴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해"
그 말에 너무나도 큰 공감이 갔다.
이때, 피디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바로 일을 구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무슨 일이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잘 해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그 노력의 끝엔 나의 성공보단 공황장애가 먼저 찾아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의 루틴을 이곳에서도 이어 갔다.
산책을 하면서 책을 읽고, 카페에 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등산을 가고.
그리고 지금은 공황장애란 걸 핑계로 내 성격을 죽이면서 살지는 않는다.
더 이상의 나를 위한 희생보다는 나를 위해서 산다.
첫째, 하루에도 수 만 가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나'이지만 지금은 세 번만에 그 생각을 끝내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며,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안중에도 없다.
둘째, 이젠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지도 않는다. 매번, 상상 속의 나를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셋째,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버렸다.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사는 중이다. 그랬더니 삶에 여유가 생겼다.
넷째,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수영,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수강생들 중 내가 제일 못하는 편인데, 못하니까 학원 다니지란 생각으로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