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가 시장을 가면 따라나섰다. 따라가면 주전부리 하나가 생기니 따라 오지 말라 해도 따라 나섰다. 엄마는 내 마음을 아셨는지 동생이랑 순대 한 접시를 시켜 주시고 홀연히 시장을 보러 가셨다. 동생이 시장을 따라가지 않는 날이면 나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떡이며 옥수수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시장에는 동태포를 뜨시는 할머니들이 포진해 계셨다. 할머니들은 우악스러운 표정과 거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무서워 엄마 치맛자락 뒤로 숨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형 같은 아이가 예뻐서 그러신 걸 안다.
치맛자락에 숨던 꼬맹이가 시집가서 시장을 간다. 이제는 내 딸에게 할머니들이 말을 건다. 나도 할머니께 딴지를 건다. 할머니는 “누구 손녀네”라며 용돈을 주신다. 딸은 또 동태할머니랑 나를 보며 어리둥절한다. 동태 전은 추억의 음식이다. 평소에는 상에 잘 올라오지 않지만 제사 때면 꼭 부쳐내는 음식이다. 제사가 없는 우리 집에서는 추억이 생각나면 먹는 반찬이 되었다.
동태포에 살살 소금과 후추를 뿌려놓고 해동이 되면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서 부쳐낸다. 아이들이 냄새를 맡고 오면 바로 구운 동태 전을 하나씩 건넨다.
동태 전은 동태 몸통 가운데 줄에 박힌 가시가 있다는 거다. 항상 사 와서 약간 해동을 하고 나면 손끝의 감각으로 느껴 잔가시를 뽑아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은 나는 그런 것쯤이야라며 잘 발라먹지만 아이들은 먹다가 걸리면 다 뱉어버리기에 가시를 발라서 굽는다. 내가 아아들 입맛을 까다롭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손은 이미 가시를 빼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조금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오늘의 동태 전의 가시, 수박의 수박씨, 대게를 먹기 위해 골라내야 하는 수고로움...
성가신 음식은 진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안 먹고 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가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왕 버린 손으로 까주면 옆에서 받아먹기도 한다.
먹고 싶으면 귀찮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 애들 어릴 때는 수박씨며 게껍질을 까줬지만 그때의 나의 수고가 지금은 아이들 스스로 귀찮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수박씨도 뱉던지 삼키든지, 게껍질도 잘 발라 먹는다. 입 짧은 막내도 게는 스스로 발라 먹는다. 맛있다고 각인된 음식은 귀찮음을 이겨낸다.
어떤 중요한 일에도 그런 것 같다. 스스로가 성취의 맛을 보면 다음번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알아서 한다. 조금의 귀찮음에도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가시를 발라내서 먹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과 같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크게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열정이 있으면 처음으로 저항을 극복시켜 순조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해 주고 속도를 부여해, 일단 시작한 이상 그것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열기(주1)를 갖게 한다.
무슨 중요한 일을 할 때도 항상 성가신 일이 따라오는 것 같다. 애들이 공부 좀 한다면서 책상을 치우고 있다. 급한 약속에 씻다 말고 화장실 청소할 곳이 보인다. 자잘한 일은 제쳐두고 해야 할 중요한 일 먼저 해야 한다.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고, 뒤에 여유 있게 일을 함으로써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다. 속도가 부여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요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힘이 생긴다.
주1> 랄프 왈도 에머슨저, 에머슨수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