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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

by 지음

하~ 아무것도 하기 싫은 주말이다.


뒷동산을 걷고 내려오면서 시장 가서 나물 사다가 나물밥해 먹자는 신랑의 말에 탕국만 끓여서 곁들여 먹자 합의를 보고 내려온다.

아이들에게 전화로 나물밥 먹을 것을 통보하자 독립투사도 아니면서 저항을 심하게 한다.

엄마, 아빠도 먹고 싶은 것 좀 먹자고.. 큰아들이 돈가스가 잡수시고 싶으시다고 그것도 함께 주문을 넣는다. 단골 정육점에서 돈가스를 사고 나물이랑 두부도 샀다.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 돈가스를 바싹하게 튀기고 탕국을 끓인다. 나물밥의 비장의 무기는 탕국이다. 조갯살과 홍합살을 잘게 다져 넣어 참기름과 국간장을 넣고 볶다가 쌀뜨물을 넣고 두부를 넣어서 끓여낸다. 간단하게 끓여내지만 나물들과 비벼서 먹으면 정말 환상이다.

경상도 바닷가가 고향인 탕국은 해산물이 많이 들어간다. 서울식의 소고기와 다시마, 두부를 넣은 고소한 탕국과는 달리 또 다른 맛이 있다. 친정에서는 열댓 가지 엄마표 나물을 대접에 담고 가운데 탕국을 한국자씩 담아서 내놓는다. 헉~ 오늘은 탕국만 끓인다는 것.

나물밥은 신랑이 좋아하는 도라지, 고사리랑 막내의 숙주나물 세 가지만 샀다. 탕국 한국자와 어제 마늘종 데쳐서 고추장에 무쳐놓은 마늘종 무침을 넣고 비빈다. 마늘종의 고추장이 탕국 국물에 쫙 퍼지면서 발갛게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잘 무쳐진 나물에 밥 비비는 것은 같은 나물인데 맛이 다르다.

같은 나물인데도 각자 취향대로 비빈다고는 하지만 맛이 다를 일인가?

음식 하는 사람도 손맛이 좋아야 한다지만 각자 맛있게 먹으려면 스스로 손맛을 키워야 한다.

요리에 똥손인 신랑은 한쪽은 밥이 덩어리지고, 나물은 뭉쳐져서 먹고 있다. 그냥 비빔밥도 아니고 탕국이 들어간 나물밥인데 무슨 밥이 덩어리지냐고요~ 뭘 비벼서 먹을 때는 아이들보다 신랑 대접을 먼저 보게 된다. 또 맛없게 비벼서 맛있다고 드시고 계신다.

반면 음식에 진심인 둘째는 맛조합까지 한다. 식탁 위 음식으로도 안되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 중 생각이 나는 것이 있으면 가져와서 맛 탐구에 들어간다. 나름 음식에 맞는 맛조합 레시피를 찾는다.

여러 번의 실패를 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에는 계속 시도를 해보는 둘째를 보면서,

손끝의 예민함이 깊은 손맛을 만드는 것 같다. 관심사에 호기심이 있고 관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끝이 감각적으로 예민해지는 것 같다.


연결점이 없는 것 같은 두 지점들을 연결시켜서 이어주는 감각들

감각이 환경에 익숙해지지 않고 낯선 것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눈

어떻게든 하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예민함을 키워주기도 한다.

예민함은 관심사에 호기심과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에 힘입어 계속 갈고닦아야 발현이 되는 것 같다.

스스로가 이 정도는 괜찮다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성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던 딸의 장점을 발견했다.

나도 예민함을 갈고닦아 평소 익숙한 일상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싶다.

계속 낯섦을 발견하려 노력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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