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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 잘 맞는 그녀들

by 지음 Mar 02.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할머니와 손녀,

둘이 죽이 잘 맞다.

우리 딸은 늘 할머니가 오시는 날을 기다린다. 

할머니가 내려간 날에는 항상 “할머니 가셨어?”라며 하교후 아쉬움을 표한다.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으면 엄마의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항상 무뚝뚝한 모습, 웃음끼없는 모습이라고 내 인식속의 엄마의 모습이 내가 아는 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모들은 엄마를 유머러스하고, 분위기를 잘 풀어주고, 리더쉽있는 사람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어쩌면 이모들이 말한 면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한번씩 만나는 사람들이다.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물론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의무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막중함을 가지고 있어서 후자의 부분이 딸인 나에게는 덜 나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듬성 듬성 오랜 기억이 전자의 엄마로 재설정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면에서는 시댁식구들과 남편, 풍파의 세월에 애들을 데리고 살려니 갈대처럼 이리저리 바람부는대로 흔들리면서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원래의 엄마 성격을 잊은채.     


인간이 서로 크게 일치하는 경우에도 때로는 사이가 벌어지거나, 대부분은 일시적인 부조화가 생기게 되는 법인데 이는 현재의 기분에 차이가 생겨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재의 기분이라는 것은, 각자 현재의 처지, 일, 환경, 몸이 처한 상황, 그때 그때의 사고 과정 등에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게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조화로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부조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장해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수정을 끊임없이 행하여 균등한 조정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교양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주1)

엄마와의 어색한 관계를 풀지 못하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 때문일까?     


둘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서로 웃긴 말을 하면서 둘다 평소에 찾아볼수 없는 즐거움을 탐색하며 서로를 보고 웃는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태권도 국기원 심사를 받으러 갔다. 마침 엄마가 와 계셔서 같이 갔다. 

10년전쯤 큰아들 심사를 받을 때와는 심사 보는 아이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보였다. 

심사를 마치고 할머니가 손녀에게 

“큰손자 심사 받을 때는 다부지게 다들 잘 하더만 이번에는 다 빤쥬 고무줄 터진 거 같이 헐랭이처럼 하노?” 

손녀는 할머니 말에 숨이 넘어간다고 웃는다. 

삶은 고단해도 그 유머스러운 한마디가 어린 나에게도 필요했던 것 같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아침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각자의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할머니랑 손녀는 또 둘이서만의 시간을 가졌다. 

둘은 해변을 거닌다고 나가서 2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지를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신발을 벗고 해변을 거닐었는데 벗은 지점에 돌아왔을때 무언가가 덮혀 있어 시작 지점이 아닌줄 알고 쭉 더 올라간 거였다. 둘은 길 잃은 무용담을 늘어놓는데 이야기 속에는 불안함이란 찾아볼수 없고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학창시절 무슨 말만 하면 까르르 넘어가는 찐친처럼.

딸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집을 찾느라 현지사람에게 “many many villa!!”를 외쳤단다.      

둘이라서 불안함 1도 없었다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해변을 종종거렸을걸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찡해진다.      

영원한 것은 변화뿐이다. 영리한 자라고 불리는 것은 껍데기일 뿐인 안정에 속지 않고, 지금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방향을 예견하는 사람이다.(주2)

엄마와 나의 관계도 조금씩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어떤 방향을 잡을지는 내가 결정해야 하는 거니. 


할머니와 손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할머니와 손녀와의 관계에서는 아무 꾸밈도 없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엄마가 생소하기도 하지만 나랑의 관계에서 하지 못한 것을 손녀랑 하는 것을 보고 대리 만족을 얻는다. 

다음번 여행에는 엄마와 나 그리고 딸 셋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딸에게는 할머니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어서 고맙고, 엄마랑 할머니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풀어주어서 고맙다.

엄마에게는 평소 보지 못했던 모습에서 엄마를 다시 한번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재정립하는 시간을 주어서 고맙다.


둘이 쭉~ 좋은 우정을 쌓아가길 바란다.



주1>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인생론

주2>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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