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
심화 독서를 하면서 ‘도덕감정론’을 읽는다.
정말 한 문단을 몇 번을 읽어도 와 닿지 않는 것이 참 많다.
처음에는 내용을 파악하려 붙잡았지만 지금은 그냥 읽는다. 현재 수준이 이 정도이기에 와 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마음 비우고 가기로 한다.
책의 반을 읽는 동안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오늘은 비워서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읽힌다.
인성의 구조적 특성상,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그는 곧 크게 어렵지 않게 일상의 평정을 즐기게 된다. (중략)
그는 곧 자신을 자기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방관자로 된다. 약한 사람들은 처음에 때때로 그렇게 하듯이, 그는 울거나 탄식하거나 그것에 대한 비관하는 일을 더 이 이상 하지 않는다. 그는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몸부림도 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다른 어떤 시각에서 관찰하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인성의 구조적 특성상,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인성의 구조적 특성이 뭐지? 정말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나? 내 경험을 가만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니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쪽으로 해석할 때가 있다. 그것이 정당하게 한 해석인지 아님 회피성 해석인지는 상황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인성의 구조적 특성이 이런 것일까? 그래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일까? 삶을 살기 위해?
‘돌연히 발생한 불행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불행을 겪으며 산다. 물론 행복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큰 진폭으로 다가오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기복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견뎌내기만 한다면’이라는 말이 참 묘하게 마음의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이 최고의 난제이다.
기복이 심하더라도 견디면 감정을 배제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결국은 그것이 체화되어 생각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결국, 견뎌내야 모두 가질 수 있다.
행복은 마음의 평정과 향유 가운데 있다.
그렇다.
아무리 주변의 환경이나 여건의 외부적으로 충족되는 것이 있어도 스스로 마음의 평정이 없으면 향유할 여유도 없고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마음으로는 어떤 좋은 것에도 자신을 둘러싼 여건이나 환경을 탓하게 된다.
점점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바껴 가는 것에 너무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하루다.
복잡다난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제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다 감사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고가 더욱 풍부한 사람의 경우에는 아마도 더욱 빠르게 그 평정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고, 그 자신의 사고 속에서 훨씬 나은 즐거움을 발견할 것이다.
지금 나는 이렇게 ‘사고가 풍부한 사람’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중이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적당한 선에서 큰 진폭없이 마음의 평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이고 그 속에서 분명 고통도 있지만 즐거움과 기쁨도 같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