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현존해라!”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의미를 모르니 중요한 말이라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오는 모든 자극들을 한 번씩 생각한다.
그냥 지나가도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온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속담에서 진실한 것은 온갖 우화나 비유에서 진실하다. 정신과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이 관계는 어떤 시인의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관계는 사람들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행복한 때에 이 기적을 생각하는데, 현자는 나머지 모든 경우에 자기가 눈멀고 귀먹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한다.(주 1)
정오독서 때도 나온 말이 다음 새벽독서 때도 나왔다.
정오독서 때 여러 이유로 집중하지 못했다.
두 번의 비슷한 자극이 나에게 왔다.
그것을 두 번째에 알아차렸다.
정말 내가 에머슨의 글귀처럼 눈멀고 귀먹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랑이 항상 저녁에 학원을 마친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약속이 있어서 내가 갔다.
상향등을 켜고 주차되어있는 아저씨에게 눈부시다고 하향등으로 바꿔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말씀을 드리는 찰나 짧은 순간이었는데 말할까 말까를 생각조차 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아저씨가 좋게 받아들일까?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근데 너무 흔쾌하게 등을 바꿔 주셨고 그 순간 신호가 바뀌었다. 근데 앞에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 두 명이 건널목에서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다 먼저 가라는 신호를 나에게 보낸다. 평소에는 먼저 가라고 나도 손짓했겠지만 아이들의 배려에 내가 먼저 돌아서 나온다.
학원을 마치고 삼삼오오 뭉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이들.
가방을 들쳐 매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아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는 아이.
모두 자기의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순간을 본다.
삶의 무게도 있겠지만 그렇게 웃으며 천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그렇게 그 순간을 그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통과하는 줄도 모르는 채 통과하고 있었다.
살아내는 힘을 하루하루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몇십 초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집 앞 엘리베이터.
둘째가 나를 쳐다봤다.
운전한다고 보지 못한 얼굴을 눈에 들어왔다.
순진하게 올려보는 아이에게 마른 코딱지가 코에 붙어있었다.
그것을 떼어주는데 너무 이뻐 보인다.
“못났는데 너무 귀엽다 딸아”
무슨 말이지? 의아한 눈빛, 무슨 말인지 또 알 것 같다는 미소...
그냥 다 고맙고 고맙다.
그냥 그 순간 찰나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날들이 많았을 텐데...
그렇게 순간 와 줘서 고맙다.
그러한 것이 여름날 구름같이 느닷없이 엄습해 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소? <맥베스 제3막 제4장에서>(주2)
매일 매 순간 기적을 느끼며 살라고 온 기적적인 순간이다.
주1,2> 자기신뢰 철학, 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