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는 너답게 살아라

연극을 마친 소회

by 지음


무대의 막이 내리고,

일주일 전 토요일. 까마득하게 꿈처럼 느껴진다.


모두들 열심히 낭독극을 준비했고 거기에 손발을 맞추고, 또 마음을 맞춰서 그날의 무대에 올랐다. 작가님들과 관객들과의 호흡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정말 인생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을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롯이 나의 삶에서 진귀한 경험으로 손꼽으라면 아마 열손가락 안에 들어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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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조명을 조절하는 중, 암전의 순간.

힘찬 목소리가 암흑을 뚫고 나를 찾아든다.

흔들림 없는 속도와 안정감 있는 목소리.

‘헉~ 큐카드 없이 읽어 내려가는 거야?’

순간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왔다 갔다 했지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얼마만큼 연습을 했냐'였다.

아니, 큐카드 없이 연습을 해본다는 생각을 못했기에, 큐카드에 의탁해 이제껏 연습했기에 그것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내 손에 들여있는 ‘자기신뢰’에 대한 큐카드가 무색해졌다. 큐카드를 항상 손에 놓을 수 없었던 마음은 나 스스로를 신뢰를 못했던 것이다.


대본을 다 못 외웠다?

아니 대본을 이 정도까지만 외우고 봐가면서 하자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자기신뢰는 정말 미세한 자신만이 아는 양심에서 좌지우지되는데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아니 믿지 못한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이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신이 나에게 허락한 이 나무 인형에 하루하루 나의 정직한 생각들을 기록하라, 미래를 내다보거나 과거를 떠올리는 일 없이. 그것은 확실히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보지 못했지만 서로 대칭을 이룰 것이다.

나의 책에서는 솔향기가 나고 풀벌레가 윙윙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내 창가에서 지저귀는 제비는 무명실이나 지푸라기를 물고 와 나의 집까지 지어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나아가며, 본성은 우리의 의지보다 높은 곳에서 우리를 가르친다. 우리는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의해서만 덕이나 죄가 드러난다고 생각하지만, 순간마다 선과 악을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다.(주1)


매일의 연습에는 스스로가 양심을 잴 수 있는 저울이 있을 것이다. 그 저울에 나의 양심을 맡겨본다.

내 안에서는 온갖 것들이 서로의 선을 넘나들며 싸우고 있었다.

어쩌면 책에서 배운 '자기 신뢰'를 경험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매번 있지 않았던 신뢰를 공부를 열심히 한 보답으로 운이 나를 따라와 자기신뢰를 키울 기회라며 툭 던져주고 갔을 수도 있다.


연습을 했다면 연습한 만큼 자신이 어떻게 연습을 했는지 파악이 될 테니, 스스로를 믿고 해야 한다.

집에서의 연습은 다시 수정할 시간이 있지만 결과를 코앞에 두고는 이제껏 잘 준비해 왔던 자신을 믿고 따라야 한다.

무대에 오르기 바로 전의 리허설은 대본 연습을 하는 무대는 아니다. 본 무대를 작가님들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었다.

‘넌 잘 해낼 수 있어. 끝까지 읽어내고 난 뒤의 네 모습은 어떠니?’

긍정적인 내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리고 뒤편으로 가서 다 못한 연습을 벼락치기한다.


여기서도 나에게 온 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이 연극을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너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은 재미만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되는 순간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즐겼어야 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으로 했다면 더 잘하고 싶어 혼신의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성취감으로 가져가야 했다.


혼신을 넣으려면 일을 하면서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똑바로 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변명은 일을 하면서는 민폐만 있을 뿐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자리가 어디이고 어디까지 내 역할인지, 또 중간중간 봐 가면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다 끝나고도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잘할걸.’

아쉬운 지점에는 나의 잘한 부분보다 못한 부분이 먼저 보이는 지점이다.

그런 아쉬움을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의 새로운 발화 지점으로 만들 수 있겠다.

다음 판의 전략에서는 더 큰 시선으로 보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는 나를 믿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시작점을 다시 만들어 준 것이다.


연극을 하는 경험으로 자기 신뢰에 뒷받침할 수 있는 경험을 다시 깨우치게 하고, 또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개인으로도, 전체의 조화에서도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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