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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없는 나

by 지음

우리동네에 점심정식만 하는 집이 있다. 밥이 아주 먹음직스러운 고봉밥이다. 한식 좋아하는 나는 한번씩 친구랑 이른 점심으로 먹으러 갔었다. 찌개류도 맛있고, 반찬도 매일 바뀌고, 맛도 있다. 하지만 손절했다. 주인 아저씨의 불친절함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 컨셉이 아니었다. 욕쟁이 할머니는 말만 욕이 섞혀 있지 손님을 정감있게 살피고, 투박하게 대답을 해도 요청 사항도 다 잘 들어주신다. 하지만 고봉밥 아저씨는 무식, 용감해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 아저씨의 무례한 행동을 여러번 봤었지만 그때까지도 직접적인 불친절을 경험하지 않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한번은 점심 시간 끝나기 30분전에 갔었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을 문을 잠그시는 거다. 안에는 버젓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에서 뭐라고 하시는데 들리지 않았고, 그냥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땐 '사장님이 바쁘셔서 저러시지'하고 넘어갔다.


한참 뒤 또 방문했을때는 같이 간 지인 옷에 고추기름을 흘린 걸 보고도 미안하단 말도 안 하는 것이다. 말 하려 했지만 지인이 세탁하면 된다고 해서 또 넘어갔다. 아저씨가 잔잔바리로 만행을 저지를때 '주변에 제대로 된 한식집이 여기밖에 없지.'생각하고 참았다. 가장 확실한 판단은 사물들을 깊이 파고들어가서 다른 결론을 내리지 말고, 이런 행동들을 그 가장 가까운 사정에 비추어 고찰해야 할 일이다.(주1)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난 또 고봉밥집을 찾았다.


할머니 손님이 혼자 들어오셨다. 아저씨보다 연세가 많아보였는데 할머니가 “일행이 조금 있으면 도착한대요, 조금 기다렸다가 시킬께요~” “아니요!! 아니!! 나가서 기다리세요 !!”하면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막 말을 하며 등 떠밀어서 밖으로 내보내고, 다음 손님을 받았다. 맛있게 먹고 있다가 그걸보니 속이 뒤틀리면서 밥맛이 떨어졌다. 왜 그런걸까? 그 행동을 하나의 동일한 전체 모습을 맞추어 보려고 할 때 가장 당혹하게 된다. 왜냐하면 행동들은 이상하게도 대개 서로 모순되어, 도무지 그것이 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기에는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주1) 아저씨가 나한테, 지인한테 무례하게 했을 때 다시는 안가는게 맞는 거였지만 줏대없이 밥 한번 더 먹겠다고 찾아간 내가 뒤에 할머니를 박대하는 밥맛 떨어지는 상황을 보게 되버린 꼴이었다.


절반도 못먹고 숟가락 놓고 지인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더 먹어 보라는 지인의 권유에도 입맛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는 얼른 밥집을 나왔다. 내 느낌을 믿지 않고 흐린 눈으로 상황을 계속 보다가 한번에 확~!! 눈이 맑아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확실한 법칙과 지침을 머릿속에 결정하여 세워 놓은 자에게서 균형잡힌 습관과 질서와 사물들 사이의 한결같은 관계가 그의 안생을 통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주1) 줏대있게 기준있는 삶을 살수는 없는 걸까?

이상하다 싶을 때는 좀 멈춤을 하고 뒷북을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번씩 그 집을 지나가는 길목에 맛있는 밥 냄새가 솔솔 난다. 사람들의 줄이 어디까지 서 있다.


이제 나는 그 집을 가지 않는다.



주1> 몽테뉴 저, 몽테뉴나는무엇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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