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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감사

by 폴리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늘 높은 곳에 마음을 두라고 하셨던 선생님들은

늘 낮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이 지구에 굶고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삼시세끼 굶지 않는 너희들은 감사한 줄 알아야 해”


망막이 다 떨어져 실명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수술을 앞두고 실의에 빠져 있던 내게

의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냥 감사하게 생각합시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는 동안 습관처럼 나 역시

나보다 못한 처지의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감사의 이유를 찾곤 한다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요즘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는 자영업자들의 부채 소식과

늘어나는 공실 소식에

나도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나는 아직 빚이 없잖아. 감사하게 생각하자”


어릴 적부터 강요당해 왔던 ‘감사함’의 희생양으로

나는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를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선한 의도였다 할지라도

‘비교 감사’

가장 폭력적인 감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범사에 감사하라”


상황과는 상관없이

감사는 자신으로 향해야 한다


감사는 자족으로부터 와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야 한다


‘누구보단 상황이 좋으니’ 감사하란 말은

그 감사 대상에 대한 정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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