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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으로 춤을 추고 있는가

by 폴리

공연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빠르게 내달리며 휘몰아치는 음악보다

고요하고 잔잔한 음악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모든 엠프들의 볼륨을 총 동원해

악기를 두드려 대는 동안에는

누군가의 실수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몰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자기도취의 상태에서

웬만한 어긋남이 무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요하고 섬세한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누군가의 아주 작은 실수조차

크게 도드라지곤 한다


삶이라는 음악을 연주하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에 2,3일은 편집실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을 했고

해외로 국내로 출장을 다녔고

쉬는 날이면 합주를 잡거나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다니곤 했다


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쉴 틈 없이 무언가를 해대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증이 몰려왔고

그것이 겹겹이 쌓인 ‘노력’이라는 탑에 가려진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고요하고 차분한 삶이라는 것은

곱절은 더 해내기 힘든 삶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생각이라는 놈이 자꾸 머릿속에 찾아왔고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던 분노와 불안감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오랜 기간 음악을 해 온 사람들은 안다

고요하게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 고요함 속에 드러나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생각들은 곧 더 나은 연주의 밑거름이 된다


고요함 속에 나를 내던지고

고독을 친구 삼아 지내본 후 알게 됐다


수많은 상념들을 정리해 가는 과정에서 얻게 된

나의 모습들이

얼마나 잘못된 음을 연주해 왔는지를,

얼마나 본연의 모습과는 다른 연주를 해 왔는지를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게 됐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무언가를 해대기만 하면

언젠가는 보상이 주어지리라 생각했다


액셀을 밟고 전속력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핸들을 돌려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도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리게 될 것만 같았다


고요하고 여유롭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진양조 장단이

얼마나 어렵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모르곤

휘모리 장단에 나 자신을 내던지며

고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연주를 하면 할수록

연주자는 스킬과 테크닉이 아닌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법이고


진양조 장단을 마스터한 누군가는

휘몰이 장단을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고수가 되는 법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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