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 밖에 모르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중에서>
나는 소년시절에 성경에 나오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곡을 붙인 노래를 많이도 불렀다.
사랑은 참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면서도 나는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사랑을 받기도, 주기도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내 인생은 참 슬프구나 생각했었다.
사랑은 가질수도 줄수도 없는 것이라고 믿게되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사랑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흔히들 사랑에는 4가지가 있어 아가페 사랑, 에로스 사랑, 필리아 사랑, 플라토닉 사랑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류의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며 가장 보편적이면서 복잡한 감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랑은 우연일까? 아님 운명일까?
어쩌면 인간은 복잡 다양한 사랑이라는 조건적 만남을 이어가면서 아주 사소한 이익에 손익을 따지게 된다.
오늘도 웃는 얼굴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만 마음은 진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인간들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너무나 솔직하게 다 내어준다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된다.
누군가 얼굴의 반대말은 마음이라고 했다.
얼굴은 수만 가지의 마음을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지만 그중에서 진실인 것은 아주 조금일 것이다.
얼굴은 타인에게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며 나의 정체성이고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상징이라도 했다.
오늘 나에게 웃어준 표정은 과연 진심인 것일까?
그의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한 표정이었을까?
한 번쯤은 받아줄 수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사랑은 다름을 알게되고 내 방법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 어쩜 카멜레온보다 훨씬 영묘하고 발달된 방식으로 상대를 유혹하기도 하고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인간은 아무에게나 그의 마음을 전부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는 척하는 것이다. 언제든 등을 돌리고 시선을 바꿀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원래부터 이기주의적이고 탐욕적이며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냉혹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현생 인류로 분류되는 호모사피엔스의 특성에서 잘 이야기해 준다고 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이기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어느 학자는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참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하였지만 결국 인간은 신의 당부도 내쳐버리는 패역한 존재였던 탓일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살인을 하기도 하고 처절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들에게 위로 아닌 당부를 하고 싶다.
“사랑이란 오래전부터 그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 세상의 허상일 뿐이다.”
누구는 세상살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사랑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알 수 없기에 행복이란 인간들에게는 이상적의 가치일 뿐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정절이나 신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태이다.
수시로 변화무쌍한 마음이란 것이 우리 안에 거하는 동안에는 삶이 슬프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은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떤 상황에도 적응해 내는 놀라운 능력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버리지 못하면 더 큰 것을 잃어야 하는 세상의 이치를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이 이기주의라고 할 것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통제 불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에 최소한 나만은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나는 언젠가 사람의 삶이 슬프지 않으려면 세 가지 습관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첫째는 타인을 존중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나 아니면 말고”식의 안하무인의 태도는 익히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인간 세상의 가장 치졸한 태도일 것이다.
둘째는 소통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인간 세상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어가 달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본성이 달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가 주장하는 편에서 작은 부분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나눔이 기초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즉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셋째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기도 하고 생소한 단어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간 세상이 점점 복잡 다양해 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럴 때 일 수록 다양한 학습이 요구된다.
“알아야 면장 한다.”는 옛말도 있다. 학습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고 상대를 존중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만 있어도 인간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조금이라도 줄여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천하기에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상대를 존중할 수 없어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알아내는 학습이 슬픈 삶이 아니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영역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삶이 참 슬프다.
그 이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나에게 관심도 없으며 나를 이해해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너를 향하는데 너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참 슬프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그 말이 아리송해”라는 유행가 가사가 아리송하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알 수 있다. 사랑은 우리 마음에 절대로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시 머물다가 달아나 버리는 야속한 그 무엇일 것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그 마음을 오래 붙들어 놓았다고 믿었던 사랑도 잠시 한눈판 사이에 달아나고 없다. 어쩌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에는 또 다른 사랑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아리송하다.
더깊은 사랑은 더 자연스러운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에 모질지 못한 상대방은 더욱 슬픈 일인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을 슬프게 하는 것들은 원래 인간에게 부여했던 신의 저주 같은 것이라고 믿게 된다.
마음보다 소중한 것이 물질이라면 인간 세상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갈량의 3공(공평, 공정, 공개)마저도 염원하는 구호에 그칠 뿐이니 이런 것들도 우리네 삶을 슬프게 한다.
마음은 얼굴을 통해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대는 내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니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전하지 못하게 된다.
“너 아니면 나는 어떡해?”라고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진실로 받아주지 않은 너에게서 "너는 너밖에 모르고" 내 삶이 참 슬픈 이유가 되었다고 말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서 사랑이라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 또 내 삶을 슬프게 한다.
사랑은 고통을 감내하고 잘 견뎌내야 한다. 서로에게 지루해 하지 않은 사랑을 할때 나쁜 기억들이 삭제되고 서로를 공격하지 않게된다.
공격하는 이유는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예기를 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습관으로 균형잡힌 삶에서 내 삶이 슬픈 이유를 찾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