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교육의 빈틈 속 드러난 잔혹함, 사라진 인간다움
몇 년 전 선생님의 순직으로 교사들은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들에게 분노했었고, 교권과 학생 인권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문화 조성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운동이 일었다. 그러나 사안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긴급히 교권보호위원회와 교사들의 처우 개선의 수당 인상을 통한 미봉책으로 마무리되었다. 한때 교사였던 나는 학교라는 장소에서 알리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그것이 학생과 학부모를 향한 억울함이었을까. 어려울 때 지지가 되지 않은 동료교사와 관리자들을 향한 외침이었을까. 아니면 교육 체계 전체를 향한 경종이었을까.
최근의 공직 문화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로 인해 생존을 위해 스스로 방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기에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도,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 조직문화의 영향은 없었는지도 궁금하였다. 맥락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어려운 한계로 나의 경험을 역지사지해 보면,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조직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외면하였고,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활하였다. 그럴 때 당신들에게도 곧 닥칠 미래이니 함께 힘이 되어달라고 했을 때 오히려 라인업하거나 심지어 내게 불리한 상황을 애써 찾고 지어낸 근거를 조직에 제출하여 본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예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리고 나의 예견대로 그들도 이전의 나와 같은 처지가 되고, 나의 상황이 개선되었을 때 나와 함께 할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당시 나는 관련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성인 오지랖으로 인해 손해를 보면서 그들을 품고 함께 하였다.
어떤 교사는 당신이 교사일 때와 지금의 교직 문화가 달라져 나는 지금의 학교 문화를 모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도 예전의 동료교사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입장에서 보면 교육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장애학생 학대 사안의 진행 과정에서 녹취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항소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제시한 언론과 단체의 논평이 모질다 못해 잔인함마저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물론 녹취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장애학생의 부모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직업과 성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학대가 아닌 교육적 행위라고 적시한 내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녹취를 증거로 삼지 않았다고 해서, 학생에게 너가 싫다고 표현한 것을 정당한 교육행위라고 평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든다.
국내에서는 정서학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베스트셀러였던 '말그릇' 에서도 말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며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설파하였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도 언어는 태도이자 습관이며, 신뢰받기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긍정의 언어를 인성의 지표로 간주하고 있다. 설사 언론이 장애학생 학부모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였다 하여도 누구보다 개인정보 관리의 민감성을 잘 아는 단체들이 굳이 '웹툰작가 000의 자녀 관련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부모의 성명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악마화하는 것이 장애학생의 부모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유명인의 장애인 자녀로 태어난 학생의 모진 운명일까. 일반학생의 학대사건에서 일반학생 부모의 신상정보는 철저히 지켜주면서, 유독 장애학생 부모에게 가혹한 것 역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의 민낯은 아닐까. 혹시 이 사안에 책임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치환시킨 것일까. 우리는 애초에 누구에게 분노했어야 하는가.
특수교육에서 장애학생의 부모는 자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보제공자이므로 전문가들이 파트너쉽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대상이며 부모와 협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학생의 교육적 성과(진보)를 위해서이다. 또한 보호자가 없을 때 교사는 장애학생의 권리를 대신 옹호해 주야 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어른들의 싸움에 정작 아이는 온데 간데 없고, 마녀사냥 게임처럼 이성이 마비되어 부모와 교사가 적이 되어 있는 이 상황이 혹시 가상의 현실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소수자의 권리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주는 것이다. 무고한 학대였다면 학대 신고 의무자인 관리자, 문의를 받은 교육청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에게 신고 제안 외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학대 사례가 있어 교사와 학생을 분리 조치를 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례처럼 조치를 취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을까. 사람들이 시스템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시스템의 운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에 의하면 사람들은 사망률이 20%라고 말하는 것보다 생존률 80%라고 할 때 수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선택한다고 한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프레이밍 효과는 법적 판결뿐만 아니라 사회적 논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집단사고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주관을 확고히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나 역시도 집단주의에 두려움이 있고 집단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교권을 지키려다 특수교육의 전문성과 신뢰를 퇴보시긴 것은 아닌지 계속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이 사안이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지만 공정성을 바탕으로 장애인자녀를 둔 유명인 부모의 무지함 비난이나 교사의 죄의 유무가 아닌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며 포용하는 결말을 꿈꾸어 본다. 나아가 교육구성원의 장애인식 개선, 교사의 통합교육 경험 유무, 통합교육 운영 경력에 따른 통합교육 운영 시스템이 정비되고 정교화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