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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가 아닌 주례사

폭싹 속았수다

by 유진 박성민

제자가 결혼식 축사를 부탁해서 갔는데 알고보니 주례사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신랑님과 신부님의 행복한 결혼식에 제 생애 최초의 축사를 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애제자인 신부님의 은사 000입니다. 오늘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신랑과 신부를 대신하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님과 신부님께 기쁨과 행복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맺도록 애써주신 양가 부모님과 가족분들께도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랑과 신부는 친구의 소개로 사랑을 키워왔습니다. 어느날 신부가 000 수업을 마치고 무거운 책을 잔뜩 들고 가야할 때 갑자기 나타난 흑기사가 짐을 거뜬히 들어주는 모습에 예비 신랑의 따뜻한 마음과 듬직함을 느끼며 처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신부를 귀히 여기는 한결같은 신랑의 모습에 사랑의 힘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간호학을 전공한 신랑과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신부는 인접학문의 전공자로써 앞으로 살아가면서 협력하고 상의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부부의 연을 통해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 발전하는 관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인 결혼의 혼수 중 보통 혼수가 아닌 가장 소중한 보물도 미리 준비하게 되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그 보물이 신랑과 신부에게 이미 소중한 축복이기도 합니다. 복덩이까지 함께 주신 그 분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신랑과 신부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려하며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입학 면접에서 신부를 처음 보았을 때 밝고 환하게 웃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신부는 면접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면서도 시종일관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 이 학생이 교사가 되면 학부모님들의 근심, 걱정을 눈 녹듯 녹이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예상처럼 000선생님은 누구보다 멋진 대학 생활을 해냈고, 졸업하는 해에 국가 교원임용시험에서 00교육청 교사로 합격하여 모든 유아들과 행복한 최상의 통합교육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교육부 공모 연구 사업을 하던 해에 교원임용시험에 또 도전하여 00교육청 교사로 합격하여, 졸업생 중 임용시험에 두 번이나 합격하는 쾌거를 이룬 선배로 재학생들에게 꾸준한 노력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늘 고마운 점은 예전에 00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도 선후배 동기들과 협력하여 적극적로 어려움을 해결한 것입니다. 또한 후배인 재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본인의 배움을 나누어주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복을 지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들만 있는 저는 늘 딸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도 딸들이 생겼습니다. 제자이자 마음으로 키운 딸들입니다. 어린 대학생의 환한 미소와 센스, 유머와 열정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그 딸이 교사가 되고 어느덧 성장하여 이제 일가를 이루는 결혼을 합니다.


혼인 서약을 넘어. 우정과 의리로 산다고 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 경지를 이룰 수 있도록 신랑신부는 알콩달콩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시기 바랍니다.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따릅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관계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부부가 살면서 양육관이 다르거나 서로 생각이 달라도 존중해 주기를, 나와 다르다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배우자에게 항상 물어보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결혼 생활 30여년이 되어가는 저의 후회담이기도 하고 성공담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으로 어떤 사람이 옳거나 틀린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나처럼 잘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기 바랍니다. 그게 결혼 생활의 근본이고 부모됨이고 어른됨의 과정입니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결혼 생활을 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누구나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처럼 희비가 엇갈린 일들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게 별다를 게 없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시련이나 도전이 온다면 내가 조금 더 성장할 기회를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에 기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축하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이므로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가지게 된 신랑 신부를 응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주시고, 모두 한마음으로 부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감히 대신하여 부부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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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같은 제자의 결혼식에 눈물이 맺힌다.

아들이 결혼하면 시원하겠지. ㅎㅎㅎ 며느리한테 고마워서.
그래서 우리 부부의 결혼식 때 시어머니께서 계속 웃으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년 전 시댁과 친정 어른들께 허락을 받은 제자의 주례 부탁을 거절했던 경험을 선후배가 서로 공유했나?

결혼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기에 나는 모범적인 부부라는 자신이 없다며 거절했던 주례

제자들의 지혜에

주례사가 아닌 축사, 축사가 아닌 주례사

생애 최초의 주례사라니?

완전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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