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알아두어야 할 정보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이지만 잊을만하면 나오는 응급실 뺑뺑이 기사를 보고
희미해진 기억을 소환하여 참고로 알아두면 혹시 도움이 될 지 모를 몇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첫아이는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마치 모르모트(Marmot)를 키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모로서 미안한 일이 몇가지 있다.
먼 곳에 있는 시댁의 명절을 지내러 아주버님의 신세를 지고 경유 자동차로 칠개월의 첫째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후 아기는 지독한 폐렴에 걸렸었다. 돌도 안지난 아이를 장거리 운전으로 데리고 다닌 것이 불찰이었다.
게다가 처음 엄마가 된 나는 둔한 편이라 토하는 아이를 보고 속이 안좋은 상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고열과 구토, 결국 탈수 증상으로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을 하여
동네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상태여서 마음은 더 타들어갔다.
나의 무심함으로 아이가 급격히 나빠진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응급실에 달려갔을 때
응급실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살피거나 안심을 시키기보다 접수부터하고 오라고 하였다.
아이를 여럿 낳아본 엄마라면 좀더 담담하게 다른 방도를 찾아겠지만
첫아이의 부모는 그럴 마음의 여유도 경험도 없다.
내가 S형 인간이어서 더 서운하게 느꼈을 수 있다.
응급실에서 돌도 안된 아기의 생명을 어쩌면 저리 냉담하게 대하는지 충격을 받았다.
접수를 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했다.
응급실에 환자가 많아서 돌볼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다
응급실의 생사를 넘나드는 더 중한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겠지만
아픈 아이를 데려갔을 때 병실의 많은 생명체 중 하나를 무심하게 쳐다보는 듯한 느낌은
응급실이라는 곳은 살면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안와야 할 곳으로 각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S형이 많은 병원은 그래야 심리적 소진이 적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병원 종사자는 아무나 선택하기 힘든 일을 선택한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급한 마음에 휴일이지만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큰엄마(돌봄어머님 호칭)께 연락을 드렸다.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이미 남매를 초등학생으로 키우신 큰엄마는 동네의 전통있는 내과 병원에
연락을 해둘테니 빨리 이동하라고 하셨다. 링거를 맞고 아이는 점차 기력을 회복하였다.
어른들의 지혜와 이웃 간의 정보가 이래서 필요하다. 동네 병원 정보와 이력은 양육에 도움이 된다.
한번은 동생과 놀던 큰아이가 아파트 화단 모서리에 넘어져 무릎이 많이 찢어졌다.
긴급히 동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의사선생님이 긴급히 오셨지만, 드레싱만 하고는 다른 병원을 넌지시 소개하며 내일 가서 꼬매라고 하였다. 꼬매는데 자신이 없는 것인지, 예쁘게 꼬맸다 밉게 꼬맸다 우사가 걱정인건지, 추천 병원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후에 고칠 수 있는 아픈 상처를 그대로 두고 하루 자고 나서 다른 병원을 가라는 말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애닯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태도였다. 당연히 내 사정을 알리도 없다.
나는 아이의 무릎 치료의 권한을 가진 의사에게 빚진 마음을 가진 것처럼 아이의 상처를 잘 치료해 주시고 흉터 안남게 잘 꿰매달라고 부탁했고, 시간이 흘러 누구나 그렇듯 수술의 상처 부위 감각은 무뎌졌다.
병원마다 문화가 다르겠지만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운영하므로 어느 곳이나 조직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병원만이 아니라 어느 기관이든 조금 더 감동적인 조직 운영이 아쉬운 경우가 있다.
지역사회의 협력이나 지원 요청이 왔을 때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
백만가지 이유를 들어 안되는 사유를 들은 민원인이 내게 개인적으로 도움을 청하여
왜 지원이 어려웠는지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공문의 절차도 모르고 보내서였다는 둥, 번지수를 잘못 짚어서 보내서였다는 둥 지원을 안한 사유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민원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행정의 전문성은 이해를 못하는 민원인을 탓하기보다 민원을 해결하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대민 서비스다.
내가 서 있는 자리, 소속된 조직의 운영 체계의 역할과 정체성을 모르고 몰두하지 않으면서
늘 챗바퀴의 악센트 없는 일상을 반복하다가 본인 직업에 만족을 못느끼고 더 나은 자리의 이동만을
꿈 꾸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요즘 나의 숙제는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연가지만, 매주 하루는 연가 또는 조퇴, 하루는 초근 달기를 반복하는 직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잘 살기 위해 적당히 일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면 이해하지만, 적당히 일하면서 대민서비스를 소홀히 하는 것은 걱정이 된다. 리더십 공부를 특별히 한 적은 없어서인지 직원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요즘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도 시스템의 문제로 언급되지만 결국 환자를 중심에 두지 않은 종사자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어려움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