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보란 듯이?

by 유진 박성민

얼마 전 지인이 특정 분야에서 명망이 있는 조직의 회장직을 수락할지 자문을 구하였다.

회장에 선출되면 임원진을 구성해야 하는데 적절한 인선인지도 의견을 물었다.

그분의 생애에서 해당 분야의 기여로 볼 때, 기쁘고 축하할 일이었기에 앞날을 응원하였다.


대화중 임원 구성에 가장 중요한 참모 역할을 누군가 거절하여 서운함을 넘어 속상함이 배어 나왔다.

거절한 이의 형편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당연히 그 정도 경력이면 해내야 할 일로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죽 힘들고 지쳤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겸양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아끼는 대학 후배여서 더 서운함이 있다고 자책하였다.

거절한 이유를 짐작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거절한 이의 진짜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거절의 분노를 무시와 실망감으로 집착하듯,

지인의 지인이 수장의 역할을 ‘보란 듯이’ 하라고 조언했다며 공감까지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00대학 답네요”라고 했다.

내가 가진 편견일 수 있는데 특정 분야에서 늘 본인들이 최고의 대학이라고 느끼고 행동하는 소수 중 경쟁을 통한 타인의 평가와 결과의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취약한 자존감과 보여주기식 성공과 인정의 갈증을 드러낸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지인이 거절에 대한 좌절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안정을 위한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게 말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었겠구나 싶다.

하지만 지인에게 해주지 못한 말이 있다.

‘보란 듯이’는 긍정의 의미만이 아니라 부정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성취와 극복, 증명,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복수와 우월감, 과도한 경쟁과 과시도 될 수 있음을.


인생이 동전의 양면 같듯 ‘보란 듯이’도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과시와 자랑, 우쭐대려는 심리도 숨어 있다. 이는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매몰될 수 있음을 비추어준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와 경쟁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지인에게 훌륭히 참모를 수행할 누군가를 추천하며, 차마 하지 못한 말은

같은 대학의 후배가 아니어도, 당신을 더 잘 보좌할 참모로서 다른 대학 후배가 있으니

당신의 재능을 나누어주며 잘 키워보라는 말이었다.


의외여서 상대에게 말해 주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오히려 같은 대학 출신이 앞길을 막는 적인 경우를 간혹 목도하게 된다.

같은 대학 출신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도 않는다.

그저 내 할 일을 내가 해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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