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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Mar 08. 2024

5. 야뇨증은 왜 생길까

 세상에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있었던가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자다가 소변 실수를 하였었다. 

어릴적 자다가 꿈에서 화장실을 가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꿈을 꾼 날은 어김없이 이불을 적시는 날이었다. 

부모님이 초등학교 2학년 방학때 쌀집을 하시는 조부모님댁에 나를 며칠 맡기셨었는데 밤새 나도 모르게 이불에 소변 실수를 하여 할머니가 야단을 치셨고, 죄송하고 창피해서 집과 연결된 쌀가게에서 서성거리며 할머니의 눈도 못마주치고 눈치를 살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꽤 성장한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잘 때 이불을 적셨던 소변 실수는 추억같은 희미한 기억이지만, 오늘 소아 야뇨증이라는 검색어를 보고 첫째 아이의 야뇨증과 나의 야뇨증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 공부하는 막내딸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직장을 접으시고 첫손자를 봐주시러 한국에 오신 열정적인 어머니는 나를 키울 그러하셨듯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삼년간 키워주셨다. "너희 엄마는 9개월때 소변을 가렸으니, 너도 소변을 일찍 가려야 한다"고 남자 아이인 아이에게 소변통을 대고 '쉬쉬'라고 하며 소변을 유도하셨었다.  알고보면 나는 야뇨로 초등학교때까지 실수를 했었는데 어머니는 기억이 없으신 걸까, 기억하고 싶은신 것만 기억하시는 걸까. 손자를 봐주신 어머니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익숙한 방법을 택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 환기되었다. 


생각해보니 큰아이도 야뇨증을 겼었는데 6살까지 끌어 안고 자던 베개와 이불을 너무 자주 적셔서 아예 실수를 대비하여  저렴한 베개와 이불로 교체했었다. 이불을 적시는 것보다 더 심각했던 증상은 야외로 놀러가면 아이가 놀기 전에 우선 화장실을 찾는 습관이었다. 마치 과민성 방광증상처럼 놀다가 소변실수로 바지가 젖을까봐 화장실 위치를 확인해 두는 일련의 정해진 의례 같았다. 소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첫째 자녀는 시행착오의 산물이라고. 둘째를 낳고 기르면서 억지로 소변을 보도록 하지 않아도 26개월~33개월 전후로 아이들은  밤중에 소변을 실수하지 않고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이마다 밤중 소변을 가리는 시기가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영아기에 억지로 소변을 가리도록 강요하는 이른 배변훈련이 유아기에 오히려 야뇨증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대변은 대체로 18개월부터 가리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억지로 훈련을 시키는 것은 변비와 같은 역효과가 난다. 배변훈련의 시기와 방법이 중요한 이유는 오히려 실수를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배변을 가릴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배변훈련은 자율성의 기초가 된다. 나 스스로 방광과 항문의 괄약근을 조절하여 배변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신체와 신체의 기능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내 몸의 주인이 나라는 것, 나는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1-3세를 프로이드는 항문기로, 에릭슨의 자율성 대 수치심으로 표현하였는데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지도하면 프로이드는 완벽주의, 강박과 결벽적 성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하였고, 에릭슨은 배변 훈련, 식사 자립 등의 일상생활 습관을 기르면서 성취감에 이를 수 있으나 지나치게 통제를 받으면 수치심을 갖고 자신감이 부족하게 된다고 하였다.  


큰 틀에서 억지로 해서 변화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억지로 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이럴때

사람들은 조금은 참고 억지로 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반박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가급적 아이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여 수행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면서 배변훈련을 할 때는 부작용이 적다. 배변훈련은 자율성을 배우는 시작이자 자기주도성의 초석이 된다. 

마찬가지로 24개월 아이가 뭐든지 '내가, 내가'라며 신발 신기, 옷입기, 가방 매기 등을 시도해 보려는 것(자율성)도 비슷한 시기에 발현되는 이유이다.  

아이들의 발달을 이해하면 좀 더 느긋하게 아이마다 다른 개별적 발달을 존중하며 키우게 된다.

옆집 아이처럼 당장 잘하지 않아도 내 아이의 스텝대로 나아가면 된다. 


어린 아이에게 당장 소변을 가리게 하는 것이 자녀 인생 전반에서 그리 중요한 것일까.

어떤 아이는 방광에 소변을 많이 담아두기 힘들어 생리학적으로 용변을 자주 봐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세상에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있었던가.

안달복달하던 일도 결국 때가 되면 순리대로 풀려나간다.

아이의 야뇨증은 병리학적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이른 시기에 억지로 용변을 가리게 한 어른이 어떻게 지도했는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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