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와 대충의 경계
선임 교수님의 질병 휴직으로 내 전공도 아닌 상담전공 주임을 잠시 직무 대리를 맡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석사 논문지도 학생이 4명이나 있어 대신 지도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늘 초긍정의 마인드로 살려고 노력하기에 덕분에 상담 공부를 할 수 있겠다 마음 먹었다.
학생 4명을 비교할 수는 없고, 연구 지도 결과를 바탕으로 각자의 목적을 분류해 보자면
1. 상담 석사학위가 필요한 사람 1명
2. 의미 있는 상담 논문을 쓰고 싶은 사람 2명
3. 박사 진학을 위해 석사학위가 필요한 사람 1명이었다.
한번에 4명을 지도하는 것이 녹록치 않았지만 매사에 온 마음을 다하자는 모토로 살기에
학생에게도 보람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하여 지도하였다.
1번은 무미건조한 논문을 작성하고 졸업하였다.
2번은 지금도 덕분에 먹고 산다며 스승의 날 잊지 않고 매번 감사 인사를 하여 같은 선생이니 서로 자축하자고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현재 한명은 공립학교 교사, 또다른 한명은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 .
3번은 연락처를 삭제하였다.
3번은 지나온 세월에서 만난 사람 중 잊혀지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이다.
논문 막바지 수정 단계에서 정성을 다하여 제련하고 또 제련하는 과정은 자기와의 싸움이자 고난의 길이지만
연구물은 사후에도 남기에 완벽한 논문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읽고 또 읽으며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구방법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결론도 조악하여 제출에 급급한 학생에게 논문을 다듬는 과정이 왜
필요한지를 논문을 읽고 또 읽으며 직접 다듬어 주는 내게 학생은 "과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논문의 지도교수 이름도 남기에 책임감이 무겁기도 하거니와 이왕이면 본인의 아이디어에 의해 작성한 논문이 좀 더 완성도 높게 세상에 남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 학생은 지도 내용대로 수정해 오지 않을뿐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논문 형식을 고수하였다. 왜 수정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안내를 해도 자신의 논문에 애착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생업이 있는 학생을 연구실에 오라가라 할 수 없어 주로 논문 파일에 빨강색이나 메모 표시하여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공부할 시간을 아껴주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학생은 논문 제출을 며칠 앞 둔 상황에서 자신의 논문 수정을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하였다.
그 학생은 석사 학위를 위해 논문을 제출하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식 같은 논문에 그리도 관심 없는 학생의 그 말에 순간 나는 왜 며칠을 밤을 새며 이 사람의 논문을 읽고 수정해주려고 노력하였는지 후회가 되었다. 나의 오지랖은 또 상처를 받고 말았다.
과거 교사 시절 교생 실습지도교사였을 때 교생의 수업연구 교수학습과정안을 수정하고 다듬었음에도 아쉬운 점을 발견하여 교장선생님과 다른 동료 선생님들이 수업을 보러 오시는 공개 수업 전에 수정하자고 제안하였을 때 교생이 내게 했던 말 "그냥 가시죠" 라는 말에 '우와 대학생의 언어표현이 나보다 어른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세심하게 지도하려는 나의 탓이었겠지만 교생 실습지도와 석사논문 지도 과정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지금도 누구의 수업이고 누구의 논문인가 혼동되는 그 때의 상황이 내게 '대충 하라' 는 말인지 본인이 '대충 하겠다'는 말인지 여전히 혼돈스럽다.
연구수업을 위한 교수학습과정안도 박사학위 논문도 대충 써지지 않는데 말이다.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