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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Apr 03. 2021

사자 도도

암사자 수술 이야기

동물원에 오는 꼬마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밤에 동물원 숙직을 서다 보면 전화기 너머 술 한잔에 얼근해진 목소리로 꼬마들과 같은 질문을 한다. 친구와 2차 내기를 했는데 물어볼 때가 동물원밖에 없다면서 늦은 밤 걸려온  전화다.

“음... 시베리아 호랑이가 아프리카 사자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야생에서는 사는 곳이 달라 싸울 일이 없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는 각 대륙의 최상위 포식자로 사람들이 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자는 사냥할 때 시속 80km로 달릴 수 있고 잡은 초식동물의 목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치악력이 강하다.

그런 강한 사자에게도 생물의 숙명인 생로병사가 있다. 동물원에는 암컷 도도와 수컷 먹보가 살고 있는데 사이가 좋다. 사자사 내실에는 침상이 두 개 있다. 한 마리가 누우면 알맞은 크기인데 도도와 먹보는 다른 침상은 비워두고 같은 침상에서 붙어서 잔다. 두 마리가 누워서 좁아진 침상에선 어쩔 수 없이 먹보가 돌아 누운 도도의 몸에 다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둘의 모습은 꼭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겨울 암컷 사자 도도의 식욕이 갑작스럽게 떨어졌다. 겨울철 사자는 식욕이 왕성하기 마련인데, 이상한 징후였다. 마취해서 검사를 해 보니 세균 감염이 의심되는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였고 체온도 높았다. 복부를 촉진해 보니 딱딱한 이물이 만져졌다. 암컷 사자에게 생길 수 있는 질병에 관한 논문을 검색해 보았다.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는 사자에게 발생하는 자궁 축농증이 의심됐다. 자궁 축농증은 개와 고양이에게도 자주 발생하는데, 자궁 안에 세균이 증식하고 농이 차 시간이 지나면서 패혈증으로 폐사할 수도 있다. 의심되는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충북대 수의대 영상 진단학과 교수에게 협진을 요청하였다. 초음파 사진을 본 영상진단 교수는 도도의 자궁 축농증을 확진한 뒤 세균 동정[identification]을 위해 자궁에서 시료를 채취하였다. 동정된 세균에 효과가 있는 항생제를 처치하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쉬는 토요일, 나는 다른 지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동물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도도가 심하게 구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딸과 아내를 달래 집에 바래다주고 동물원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수의대 산과 교수와 통화를 하며 도도를 살리기 위해선 내일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대형 고양잇과 복강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다른 동물원 수의사들에게 배 중앙을 절개하여 자궁을 꺼내는 정중 절개가 실패했던 경우를 들을 수 있었다.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사자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은 복압이 강해 수술 후 봉합한 부분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소중한 정보였다. 산과 교수도 늘 하던 대로 정중 절개를 할 생각이었지만, 다른 수의사들의 실패담을 듣고 나서 옆구리 측면 절개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날 밤 CCTV로 본 도도는 몸에 열이 났는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다음날 도도는 통증으로 예민해져 있었다. 도도를 블로건 주사기를 쏘아 마취 한 뒤, 동물원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장시간의 수술이 예상되어 도도의 호흡기관에 튜브를 꽂고 호흡 마취를 시작했다. 산과 교수는 계획대로 옆구리로 접근하였고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절개했다. 복부를 열자 부풀어 오른 자궁이 눈에 들어왔고 파열된 자궁에서는 농이 터져 나와 복강이 오염되어 있었다. 며칠 더 두었다면 폐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데운 생리식염수로 복강을 세척하고 석션기로 빨아들이기를 5차례 반복하였다. 절개 부위의 장력을 버틸 수 있게 시판 중인 실 중 가장 두꺼운 실로 여러 번 봉합하였다. 과거 예민한 고양잇과 동물을 치료하던 중 통증과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기 질병으로 폐사했던 경험들이 있었다. 통증의 예방을 위해 강하고 지속적인 진통효과가 있는 붙이는 마약성 패치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몸이 유연한 도도가 이 패치를 떼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도도의 등부분 피부를 절개하여 패치를 넣고 봉합하였다. 마약성 패치의 효과가 있었는지 도도는 며칠 동안 약에 취해 몽롱해져 움직임이 별로 없었다. 봉합한 상처가 아무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도도가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재검사가 필요했다. 다시 도도는 마취 주사를 맞았다. 상처가 좀 부풀었지만 치유가 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자궁 초음파 검사를 하였다. 산과 교수는 최소절개로 인해 손이 미치지 않아 남겨놓은 자궁의 일부분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하였다. 우려했던 것은 기우였다. 그제야 산과 교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개와 고양이에게는 수없이 반복한 수술이었지만 사자 수술은 큰 부담이었다고 했다. 수술한 지 2주가 지나자 도도는 완전하게 회복된 것처럼 보였고, 예전의 왕성한 식욕도 되찾았다.

그렇게 대형 고양잇과의 복강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수의대 교수들,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면서까지 도도의 수술 성공을 기원해 준 다른 동물원 수의사들이 고마웠다.  

요즘 무료한 도도의 동물원 생활을 위해서 담당 사육사는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어 주고 있다. 어느 카페에서 보내준 커피콩 자루에 건초를 넣어 높이 매달아 주었는데 어느 날 사육사가 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영상 속 도도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발톱으로 자루를 낚아채고 있었다.

숙직을 서면서 사자사의 CCTV를 본다. 도도와 먹보는 여전히 다른 침상을 비워두고 한 침상을 사용한다. 동물원 숙직실로 엉뚱한 질문을 하는 전화가 온다면 묻지도 않은 사자 이야기를 길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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