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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Apr 12. 2021

거북이섬 갈라파고스

남미 에콰도르 여행기

식욕이 왕성한 아프리카 육지거북이가 며칠째 밥을 먹지 않는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새끼 거북이가 들어왔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몸무게가 56kg이나 된다. 동물병원으로 방사선 촬영을 하러 올 때, 두 명의 사육사가 차에 싣고 내리기가 버거울 정도다. 그동안 파충류들은 진료하면서 치료 반응이 좋지 않았기에 힘이 빠진 것도 사실이고 진료보다는 온도와 먹이 관리 등 사육환경에 집중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했었다. 콧물이 줄줄 흐르는 거북이를 보고 있자니 다시 파충류 의학책을 뒤적이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11월 지리산에서 곰을 복원하는 수의사들과 갈라파고스에 가기 위해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 도착했다.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고 보니 키토는 해발 2,000미터 고지대 도시여서 저산소증을 겪고 있었다. 다시 키토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 걸리는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서쪽 해안선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섬으로, 해류에 휩쓸린 생물이 우연히 표착될 수도 있는 거리지만 독립적으로 새로운 종으로 분화될 수 있는 적당히 먼 거리였다. 

산타크루즈 섬의 발트라 공항에 내리자 건조해 보이는 땅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날씨는 한류가 강해지는 시기라 선선했다. 숙소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길을 건너는 거북이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보니 갈라파고스에 온 것이 실감됐다. 하늘에는 몇 달씩 땅에 내려오지 않는다는 군함조가 연처럼 날고 있었고 항구에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는 바다사자가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바닷가에 나가 보니 바다이구아나가 있었다. 다가가니 쉭쉭 대서 더는 접근하지 않았다. 바닷속 바위에 난 해초를 뜯어먹는 이구아나라니 격변하는 환경에서 자연의 선택을 받느라 참 고생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방문한 찰스다윈연구소에는 핀타섬 땅거북 조지가 박제되어 있었다. 조지는 1971년 핀타섬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거북이로 2012년까지 혼자 지내며 40년 동안이나 멸종위기종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살았다. 연구소 안쪽에는 살아있는 거북이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거북이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했다. 이 조용한 거북이들을 17세기 무혈입성한 해적들과 포경선원들이 식량 용도로 씨를 말릴 만큼이나 많이 잡아갔다고 한다. 식량이 필요한 배들은 굼뜬 거북이를 손쉽게 잡았고 갑판 밑 창고에 쌓아둘 수 있는 거북이는 살아있는 

비상식량이었다. 해적들은 섬들을 돌다가 더 큰 거북이를 발견하면 다른 섬에서 가져온 작은 거북이들은 던져버렸고 그래서 잡종 거북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멸종된 거북이를 살려내는데 이 잡종 거북들의 유전자가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한다. 다윈도 귀향하는 비글호에 새끼 거북이들을 실었고 건강이 나빠져 비글호 선원에게 넘긴 거북은 호주 동물원에 기증되어 비교적 최근인 2006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가이드를 동반하여 거북이 야생공원에 갔다. 제주도 목장 같은 곳에서 많은 거북이들이 말처럼 풀을 뜯고 있었다. 몸무게가 300~400킬로그램이나 나간다고 한다. 한쪽에는 죽은 거북이 껍질을 전시해 놓았는데 내가 거북이라고 상상하면서 들어가 보았다. 머리와 앞다리가 나오는 쪽의 등껍질이 안장처럼 위로 휘어져 위아래의 껍질 간격이 꽤나 넓었다. 섬에서 자라는 선인장을 먹기 위해 목을 길게 빼기 위해 그렇다는 설이 있다. 주변의 선인장도 거북이 목을 피하기 위해 높은 잎을 달고 있는 듯했다. 거북이목과 선인장 몸통 중 어느 것이 빨리 자랄지 상상해보았다.  

어느 날 거북이는 남아메리카 해안가 숲에 살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천으로 떠내려갔다. 하천은 바다로 흘러갔고 거북이는 해류를 타고 긴 시간을 여행했다. 운이 좋은 거북이는 표류하다가 가까스로 섬에 도착했다. 우기에는 섬에서 나는 풀을 뜯어먹어 지방을 축적했고 건기에는 선인장을 먹으며 견뎠다. 언젠가부터 간간히 사람들이 섬에 들려 거북이들을 데려가 배에서는 식량으로 썼고 수도 키토에서는 가로등을 밝히는 기름이 됐다.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같이 들여온 염소는 거북이의 풀을 뜯고 있다. 어느 섬의 거북이들은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오래 산다는 이유로 참 많은 것을 봤을 거북이들이다. 거북이 앞 껍질의 간격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선인장을 먹기 위함도 있지만 간격의 빈틈을 헤집고 공격할 포식자도 없기 때문이다. 과거 자연의 어느 포식자보다 위험했던 인류는 이제는 갈라파고스를 세계 자연유산으로 보호하고 있다. 

아프리카 육지거북이는 아직 먹지 않는다. 조용한 거북이지만 검사를 하려고 만지니 쉭쉭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집어넣고 껍질만큼 단단한 앞다리로 틈을 막는다. 주사를 목에 놔야 하는데 난감하다. 아프리카에는 천적이 득실 됐으니 거북이 조상들은 빈틈을 보일 수는 없었음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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