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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꿀을 넣은 살구주스

by 라이프 위버

8월 중순이 지나면 나의 일상은 개강 모드에 돌입한다. 개강 준비 중에 머리를 다듬는 일이 들어있다. 오늘은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며 미용실 원장님과 폭풍 수다에 빠졌다. 그녀와는 영화를 포함해서 어떤 주제든지 수다를 떨 수 있어 미용실에 가면 얌전히 앉아 있다 오기가 힘들다.

오늘 화제의 중심은 살구주스와 꿀이었다. 생각이 비슷해서 살구주스와 꿀에 대해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봄에 남편이 농촌살이를 할 때 살구를 딸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과일을 재배하는 한 농부가 올해는 살구를 파는 것은 포기했으니 마음껏 따 가라고 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농촌살이를 하는 동료들은 정말 욕심껏 살구를 땄나 보다. 남편은 사냥 나갔다가 가족의 먹거리를 메고 오는 원시부족의 사나이처럼 의기양양하게 살구를 15킬로 박스에 가득 채워왔다.

처리는 온통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신 것은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사실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살구가 눈에 좋은 물질이 들어있다고 해서 비문증이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을 위해서 냉동해놓자 싶었다. 적당히 좋은 것을 골라 선배언니에게 나누어 준 후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살구의 씨를 빼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그중 중간크기(입에 맞지 않을까 봐) 지퍼백에 든 살구를 미용실 원장님에게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녀가 신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시니까 꿀 같은 것을 넣고 갈아먹으라는 말과 함께.

원장님은 씨도 다 뺀 상태라서 그냥 갈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좋았다며 얼은 살구를 슬러시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물을 넣고 주스로 갈아먹기도 했다며 꿀을 넣으니까 맛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흐믓하게도 내년에 살구철이 되면 시장에서 살구를 사다가 얼려놓아야겠다고 했다.

그러다 꿀로 화제가 옮아갔다. 꿀강의, 꿀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예로부터 꿀은 좋은 거였다.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엌 캐비닛에서 천대받고 있는 것이 꿀이다. 그것도 주로 선물 받아서 생긴 것들이다. 요리에 넣기는 망설여지고(원장님은 꿀을 요리에 넣는 것은 왠지 꿀의 격을 떨어트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꿀을 따로 먹을 기회도 별로 없다. 아직도 드라마에서 술 마신 남성에게 꿀물 타준다는 대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숙취를 해소하는 드링크가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그런 대사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원장님 집에서 쓸모없이 쓸쓸하게 존재하던 꿀이 살구 주스를 만나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나는 이웃과 상호작용하여 살구를 전파했고 꿀의 효용가치를 끌어올렸다. 오지라퍼인 나는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면, 그리고 서울이 아닌 작은 지역사회에서 살게 되면, 더 많은 이웃들과 내가 가진 것, 내가 아는 것 중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그들이 주는 것도 받으면서 더 많은 일상의 즐거움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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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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