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 이미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인 후배의 도움을 받았다. 디지털 세대가 아닌 내게 상대적으로 단순한 브런치도 낯설고 어려웠다. 그래서 매거진도 한참 후에나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하나 있었다.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데 구독은 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지 후배에게 물었을 때 후배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답변하지 않았다. 구독자 이천 명이 넘는 후배였으므로 브런치의 생리를 모를 리 없었겠지만 마치 자신도 잘 모르는 것처럼 자신을 먼저 구독해 달라는 뜻이 아닐까요?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 안다. 브런치의 생리를.
처음에 이런 사람도 있었다. 그는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좋아요을 눌러주었다. 그런데 조회수를 보고 판단해 보면 그가 글을 전혀 읽지 않고 그저 좋아요을 누른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매번 그렇게 좋아요을 눌러주는 정성을 생각해서 그의 브런치를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그의 글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전혀 아니어서 아예 글을 읽지도 못했다.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도 사라졌다.
나도 오다가다 어떻게 하면 구독자 수를 늘리는지에 대해 쓴 브런치 글을 하나 읽게 되었고 그 글을 통해 왜 어떤 작가들이 구독을 눌렀다가 조금 있다가 아니면 하루 이틀 후에 구독자에서 사라지는 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분들의 부지런함과 기민함을 감탄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절박함에 등이라도 토닥여주어야 할까?
나도 구독자 수가 많기를 바란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나의 구독자들이 가끔이라도 나의 브런치를 찾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노력한다. 내가 구독한 사람들이 건재한지 요즘은 어떤 글을 쓰는지 보러 아주 가끔씩 찾아간다. 그런 마음으로 초창기에 구독한 한 작가를 찾았는데 그 작가가 뜻밖에 내 브런치 구독을 눌러주었다. 그는 자신이 구독하는 작가를 소수로 두고 있다. 자신의 구독자 수에 비해 아주 적은 수이다. 그는 자신이 감당할 숫자로 구독을 하고 싶은 것이다.(나는 이런 그의 태도를 존경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그는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나를 방문한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님을 잘 안다. 이 분 외에도 꼬박꼬박 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 한 두 분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나는 브런치 글도 겨우겨우 쓰고 있다. 느리기가 동물에 비유하면 거북이 같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분들의 정성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브런치를 하기 전에 나는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포기했었다. 브런치는 비교적 심플했다. 내가 감당할 만해 보였다. 그리고 브런치를 하려면 자.격. 이 있어야 한다는 있다는 점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나도 한 번 떨어지고 브런치에 입성했다.) 처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많이 기죽기도 했다.(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 글을 끄적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글의 자기 치유적인 힘, 글의 자기 수행적인 힘, 글을 쓰면서 오는 창작의 기쁨 등을 느끼고 있으니 브런치 시작하기를 잘한 것이다. 이제 브런치에도 기업 마인드가 적용되는 것을 보고있는데 브런치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브런치는 내게 고마운 공간이다. 그리고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는 부지런하고 심성 고운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있어 글을 쓰는데 힘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