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한 이곳 상주는 고향도 아니고 연고지도 아니다. 우연히 상주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귀촌지로 괜찮아 보였다. 우선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비교적 남보다 일찍 친환경 농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리고 경치가 좋다고 소문난 고장이 아니라서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다는 점 등이 상주를 택하게 하였고 그러한 이유들 저변에 나의 게으름이 깔려 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귀촌지를 탐색하기에 나는 결코 부지런하지 못하다.
은퇴를 일년 반 정도 앞둔 2024년 여름방학 직전이었다. 농림부에서 운영하는 '그린대로' 홈페이지 '농촌 살아보기' 메뉴에서 여름방학 동안 살아보기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하던 중 상주 낙동면 승곡체험마을 공지를 발견했다. 살아보기는 보통 봄과 가을에 쏠려 있어서 여름방학인 7월, 8월에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승곡체험마을이 6월 10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6월 3일부터였는데 신청자 중 한 명이 참석을 철회함으로써 추가모집을 한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다. 기말시험이 남아 있었지만 이틀만 결석하면 될 것같아서 일단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에는 상주에 살게 되었을 때 지역사회에 어떤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지 적는 칸이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니 당연히 영어 관련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면접에서는 기말시험이 남아있는 나의 상황을 양해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결과는 참가자로 발탁되었다.
살아보기를 할 경우 지자체들은 참가자들에게 모든 것이 갖춰진(물론 침대는 아니다)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고 연수 명목으로 우리에게 월 얼마 정도 교육비를 지불한다. 지자체마다 교육비가 다르고 해가 거듭하면서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특히 전 정권 때) 지금은 정권이 바뀌어서 사정이 달라졌을 수가 있다. 2024년 상주시는 살아보기 참가자들에게 월 30만 원을 주었다.
두 달 살아 보기를 하는 동안 남편이 가끔 내려왔다. 귀촌에 관해서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해 여름 남편이 목공 심화반을 수강할 계획이 있어서 나 혼자 살아보기를 신청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상주에 관심이 생긴 남편은 그다음 해인 2025년 상반기에 상주 내서면에 있는 밤원 체험마을에 지원을 해서 두 달 살아보기를 했다. 서울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밤원에서 체험일정을 유연하게 짜줘서 서울에서 이틀 강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밤원에서 귀농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남편은 꼭 상주로 귀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본인도 상주에서 두 달 지내면서 여기저기 다녀보니 농지가 많은 상주지만 자연이 좋은 곳도 많고 다닐 수 있는 산도 많다고(남편은 소위 산꾼이다) 상주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상주에서 가까운 유명산으로는 속리산과 구병산이 있다.)
그동안 남편은 '그린대로'에서 시행하는 귀농귀촌 교육을 150시간 이상(온오프 합산) 이수했었다. 그리고 나는 승곡에서 귀촌형 살아보기를 하는 동안 상주서울농장(귀농귀촌 지원기관)에서 제공하는 퍼머컬처 교육도 받았었다.
나와 남편이 이렇게 상주에서 농촌 살아보기를 했다는 것, 남편의 '그린대로'를 통한 교육이 100시간(경쟁력이 있기 위한 최소의 시간)이 넘었다는 것, 그리고 나의 농업 관련 교육 이수 등이 상주시청에서 제공하는 빈집 리모델링에 선정된 큰 이유가 되어주었다. 리모델링은 우선 상주시청에서 빈집을 공모한다. 그리고 선정된 빈집의 리모델링 비용 일체(내가 아는 한)를 지불한다. 빈집의 주인은 리모델링을 한 후 오 년 동안 상주시청이 귀농귀촌인에게 빌려줄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아주 최소한의 보증금은 물론 주인이 받는다.
상주는 이러한 임대사업을 작년 하반기에 처음 시작했다. 그전에도 귀농귀촌한 사람들에게 3년 동안 매달 15만 원씩 집세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획기적인 프로그램은 지난 10월에 처음 시행했는데 우리의 경우 10월에 나온 한 채에는 선정되지 못하고 11월에 나온 두 채 중 한 곳에 선정되었다. 전남의 어떤 고장은 1만 원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월세 1만 원에 집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 오래전부터 시행했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지차체들이 인구유입을 위해 먼저 노력했고 전입자들에게 혜택을 더 많이 제공하는 것 같다.
이제 농촌에서의 생활은 시작이다. 남편은 과수를 많이 재배하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자라났다. 농촌에서의 생활에 내가 잘 적응하고 삶의 질이 도시보다 더 나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안 해보고 망설이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며 삶에 직접 부딪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상주는 참으로 귀한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