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웃이 나눠주는 농산물을 받을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리도 잘하고 밭일도 잘하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이웃으로부터 내가 받은 첫 농산물은 알배기 배추 두 포기와 쪽파였다. 3월 24일 화요일에 받았다. 그날 우리 면 노래교실 개강 날이어서 기억한다. 노래교실 다녀오니 동네 할머니께서 부침개나 해 먹으라고 놓고 가셨다고 남편이 전해주었다. 마음이 정말 푸근해졌다.
그런데 쪽파가 꽤 돼서 파김치를 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일을 무서워하는 나는 일주일도 훌쩍 지난 이번 주 수요일에야 겨우 실행에 옮겼다. 그것도 다듬는 것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알배기 배추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사실 이 경우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 구십이 넘은 사려 깊은 할머니의 정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다음 받은 농산물은 내가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바로 씨감자다.
그날은 25일 수요일이었다.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 때문에 알게 된 지인이 심고 남았다면서 씨감자와 멀칭용 비닐까지 주었다. 우리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우리 텃밭은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10년 정도 방치되었던 텃밭이라 흙을 한 번 뒤집어 주어야 했다.
부랴부랴 이장님 조언대로 포크레인 기사에게 부탁해서 땅을 갈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텃밭에 돌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남편이 아직 서울에 일이 있어서 돌 고르는 작업을 미루게 되었는데 시간이 났을 때는 비가 계속 오락가락했다.
자루에 든 씨감자의 안녕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더 큰 일은 돌을 고르는 것이었다. 무슨 돌이 그렇게 많은지. 남편은 허리가 너무 아플 정도로 돌을 고르고 밭두둑을 만들기 위해 삽질을 해야 했다. 나 역시 호미로 밭두둑에서 돌을 고르고 감자를 심을 때는 땅을 손으로 더 파서 감자를 심는 일을 맡았다. 앞집에서 빌린 오래된 엉덩이 방석은 제 기능을 못해서 계속 불편한 자세로 일을 하고 나니 몸은 뻐근하고 뇌의 기능은 멈춘 것 같았다. 차가운 흙을 계속 만진 결과 저녁에는 콧물도 나기 시작했다.
이런 낯선 노동으로 씨감자를 받은 지 9일 만인 그저께 겨우 한 줄 심은 것이다. 그런데 어제, 남편은 서울 가고 없는 상황에서 그제 대강 만들어놓은 밭두둑 또 한 줄을 나 혼자 돌정리하고, 기억자처럼 생긴 삽으로 한쪽에 고랑도 만들고, 비닐 씌우는 작업까지 했다. 밤에 비가 온다고 해서 안간힘을 쓴 것이다. 감자까지 다 심어놓으려고 했는데 이일저일 하면서 일을 끊어서 하다보니 날이 너무 어두워져버렸다.
내게 있어 대단한 도전이었다. 우리 동네 하나로 마트에서는 엉덩이 방석을 팔지 않아서 플라스틱 목욕의자에 의지해서 돌을 골랐었다.
깨달음이 뒤늦게 왔다. 이제 시골에 갓 내려온 사람이 무슨 감자까지 심는다고 만용을 부리는가? 그것이 공짜라서 아무 생각을 안 한 것인가? 그 지인의 마음이 고마워서 무조건 받아온 것인가? 그 지인은 거절해도 이해해 줄 귀촌한 사람인데.
남편에게 이제 선언하려 한다. 난 상추, 호박이나 길러먹을 거고 텃밭 돌 정리는 앞으로는 혼자 맡든지 AI 조언대로 그때그때 작물을 심으면서 조금씩 할 거라고.(집안일도 쌓여있고, 독서도 하고 우쿨렐레도 배울 시간을 내고 싶다.) 그리고 부탁할 것이다. 누가 정으로 주더라도 농산물은 신중하게 받자고.(구십 넘으신 분들이 주는 것은 앞으로도 무조건 받을 것이다.) 요리를 하는 것도 땅에 심는 것도 아직은 내게 큰 부담이라고.
서서히 하나씩 배워가면서 텃밭도 채울 일이다. 적어도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감자, 마늘, 고춧가루용 고추 같은 것은 우리에겐 아직 버거운 작물이라는 점이다. 시골생활 초짜가 대가를 치른 후에야 감을 좀 잡은 셈이다.
(밭두둑의 흙 색깔은 오전에 일한데와 오후 늦게 일한 데를 구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