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게 아니라 감기에 걸려버렸다. 감자를 심는다고 텃밭과 씨름한 첫날부터 콧물이 나왔다. 비에 젖은 차가운 흙을 많이 만진 탓이었다. 둘째 날 혼자서 밭두둑 한 개를 정리하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일요일 손님맞이를 위해서 미뤄둔 거실 짐 정리를 했다. 정리하는 동안엔 몰랐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면역력이 떨어졌었나 보다. 그 결과 토요일 저녁에 외식을 한 후 어떤 음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난생처음으로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가려움은 온몸으로 번졌다.
다행히 밤에 잠이 왔다. 자다가 깼는데 2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속이 안 좋아 화장실에 가서 손가락을 입에 넣으니 토할 수 있었다. 식사한 지 5시간 정도 되었는데도 음식물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다 쏟아 냈지만 몸은 여전히 가려웠다. 일요일에 친구 부부가 오기로 했는데 컨디션이 괜찮아질지 염려하면서 잠을 재촉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감사하게도 가려움증은 사라졌다. 평소보다 기운은 없지만 손님맞이를 위해서 좀 더 집단장을 했다. 사려 깊은 친구가 절대 집에서는 밥을 차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본인은 평소에 아침을 먹고 점심을 간단히 채소, 과일, 달걀 등을 먹고 저녁을 4시경에 먹고 끝낸다고 한다.
친구부부가 도착하고 차를 마신 후, 친구에게 머위가 많이 났으니 좀 뜯어가겠냐고 했더니 전에 전원생활을 했던 친구는 좋아했다. 텃밭에서 친구는 머위를 뜯으면서 담장 옆에 달래와 부추도 나고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신이 났다.
우리 집에서 상주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영남제일로를 타고 내려간다. 그런데 영남제일로 길가와 주변 개천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벚꽃길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큰길에서 빠져나가 벚꽃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차길도 만들어놓아서 오며 가며 한 번씩 벚꽃나무 아래로 들어가는 호사도 누렸다. 친구 부부는 둘이 참 비슷했다. 벚꽃을 보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들이 좋아하니 벚꽃을 보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운이 좋게도 벚꽃이 피크였다.
상주의 명소 북천과 경천섬에 들렀다 오면서 우리는 벚꽃뿐만 아니라 수선화, 복사꽃, 자두꽃, 홍매화도 보고 봄의 대명사 개나리, 진달래도 보았다. 친구 덕분에 봄나물도 캐고 봄꽃도 보면서 상춘을 제대로 한 것이다. 친구가 오지 않았다면 비실대고 있던 나는 상주의 봄도, 텃밭의 봄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감자 심기는 남편과 내가 자초해서 한 고생이다. 그 고생 중에 친구의 방문이라는 낙이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다. 내가 스스로 만든 고생의 씨줄과 어디선가 날아든 기쁨의 날줄로 엮어지는 것. 그런데 때로는 시련의 날줄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 때, 시련을 견디게 하는 건 기쁨의 씨줄이다.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시련의 날줄을 대비해서 평소에 기쁨의 씨줄을 만들어 놓아야할 것이다. 소유나 성취를 좇기보다 즐겁게 사는 데 마음을 두면 될 것. 그러다 보면 나의 일상은 봄빛처럼 환.하.게. 짜여갈 것이다.
(대문사진: 상주 북천. 4월 5일에 북천의 벚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