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윤지미산 나들이
지난 주 상주시청에 전입 관련 서류를 내고 돌아오는 길, 갈색톤의 풍경 속에 노란 산수유 꽃이 보였다. 반가워서 차를 세우고 잠깐 바라보았다. 이사 전 후로 경황이 없어 지금이 산수유 철인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3월이면 산우회 선생님들을 이끌고 가까운 현충원으로 산수유를 보러 가는 스프링 피버(spring fever)의 아이콘이었는데...
지난 일요일, 봄 사냥을 할 겸 백두대간에 속해있는 화령재로 걷기를 갔다. 화령재 표지석 앞에서 길을 건너면 윤지미산 들머리가 있다. 지난 여름 상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중 처음 윤지미산에 왔었다. 그때 등산로를 따라 줄지어 난 은방울꽃의 푸른 잎들을 보았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싹이 났을까 발밑을 열심히 쳐다보았으나 아직은 너무 이른 기대였다.
윤지미산은 임도로 한 번 끊어진다. 임도를 지나 산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산수유 닮은 생강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다. 노란 꽃의 냄새도 맡고 사진도 찍으며 옛님이라도 만난 듯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다가 이미 앞서가느라 모습도 보이지 않는 남편을 큰소리로 불렀다.(산 중에 우리밖에 없어서 나의 타고난 성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뒤돌아온 남편은 산악회 사람들이 소주에 이것을 담가서 먹더라, 그냥 꽃을 먹기도 하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더니 뜻밖에 꽃을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나도 꽃을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꽃의 향기처럼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신선한 맛이었다.
계속 걸어가니 여기저기 꽃핀 생강나무들이 나타났는데 대체로 경사면에 분포해 있어서 등산로 주변에 있는 것들만 감상했다. 다행히 풍성하게 꽃을 피운 생강나무 한 그루를 만나 경사면까지 내려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접한 생강나무 중 가장 우람하고 가지가 많은 나무였을 것이다.
표지석부터 1.7킬로를 걷는 동안에 생강나무 외에 꽃이 핀 것은 올괴불나무 두 그루뿐이었다. 그러니 윤지미산을 걷는 내내 나의 눈길은 계속 생강나무를 쫓아다녔다. 그다음 날인 어제, 나는 생강나무 사진을 누군가와 공유함으로써 윤지미산 경험의 기쁨을 배가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침 문자를 할 일이 있는 친한 선생님에게 용건 말미에 노란 꽃들이 별처럼 달린 그 커다란 생강나무 사진을 덤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이 생강나무 꽃이 김유정의 작품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이라는 정보를 보내주었다.
동백나무와 생강나무는 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이지만, 한국의 특정 지역(특히 중부 이북 및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 혹은 '올동백'**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의 주인공이 붉은 꽃이 피는 남해안의 동백이 아니라,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머릿기름의 대용품 (가장 핵심적인 이유)
* 동백기름: 예부터 여인들은 동백나무 열매에서 짠 기름을 머리에 발라 윤기를 내고 단장했습니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따뜻한 남쪽 해안가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추운 내륙이나 북쪽 지방에서는 구하기가 매우 귀항하고 비쌌습니다.
* 생강나무기름: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동백나무 대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강나무 열매를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용도가 동백기름과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나무를 '산에서 나는 동백'이라는 뜻으로 산동백, 개동백 또는 그냥 동백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중략)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에 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임을 알게 되었다. 봄을 알리며 산에서 가장 먼저 생명의 기운을 터뜨리는 꽃. 달콤한 향기를 깊숙이 품은 꽃. 이제야 소설의 제목이 왜 ‘동백꽃’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꽃의 생명력을 어린 처녀, 총각의 감정에 투사한 젊은 김유정의 통찰이 놀랍다. '동백꽃'이 단순한 꽃이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봄기운 같은 점순과 화자의 청춘으로 다가왔다.
다음부터는 봄에 산중에서 생강나무 꽃을 만나면 애틋한 노란색과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동백꽃나무 아래서 쓰러지던 두 젊은이의 두근거림까지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