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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Dec 18. 2022

MZ세대인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

누칼협의 시대, 공무원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주제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는 올해로 공무원이 된지 5년차, 곧 6년차가 되어 가는 90년대생 공무원입니다. 공무원 시험 공부를 일찍 시작한 편이라, 나이에 비해서는 경력이 조금 긴 편입니다.


요새 공무원 인기가 떨어진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 옵니다. 현직 공무원의 입장에서 너무나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직장답지 않게 박한 대우가 서글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며 공무원의 불만을 묵살하고는 하는데요, 행정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대우는 지금보다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과 비등비등한 월급, 거의 없다시피 한 복지 혜택, 권위적인 조직 문화 등, 대학에 다니는 후배나 동생이 있다면 선뜻 공무원이 되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저도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상사의 갑질에 퇴사를 꿈꿨던 적도 있고,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공직은 사양산업이다. 나이 먹으면 나가지도 못한다. 지금 빨리 다른 데 알아봐라'는 말씀도 종종 들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아는 가장 유능하고 사명감 넘쳤던 선배가 공직을 그만뒀을 때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내가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인가' 깊이 고민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긴 고민의 시간 끝에, 저는 그래도 공무원을 계속 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했거나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계속 공무원으로 남은 이유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일에서의 만족감, 일터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비경쟁적인 분위기가 저의 이유입니다.


먼저 일에서의 만족감입니다. 사실 저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공무원이 된 게 아닙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저 대학교 때 제가 해볼 만한 직업 중 공무원이 괜찮아 보여 선택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무원을 하면서 업무에 꽤 매력을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즐겁다는 걸 공무원이 되고 깨달았거든요. 모든 공무원들은 어쨌든 공익을 증진하는 일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고,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경우에 저에게 일정한 권한이 주어지고, 누군가는 그 권한에서 오는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공무원으로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했을 때 분명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가끔 고맙다는 인사도 직접적으로 듣습니다. 그럴 때 참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내 일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저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거의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돈 받고 일하면서 남도 도울 수 있다는 건 공직의 꽤나 큰 매력입니다.




두 번째는 일터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경우는 앞의 경우보단 운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소위 말하는 '또라이 상사'도 만나 봤고, 은근슬쩍 저를 깎아내리는 못된 동료를 만나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동료, 선후배, 상사들 중에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제가 힘들 때 진심으로 저를 위로해준 분도 있었고, 또래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서는 절친이라 할 만한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친구 만드는 것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천천히 가까워지다 보니 진심으로 좋은 인연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습니다. 지금 함께 일하는 상사는 리더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닮고 싶은 좋은 분입니다.


사실 공직생활 첫 해에는 일보다도 인간관계가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인싸'도 아니고, 오히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입니다. '네가 신입인데 너무 조용해서 팀원들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나중에 보니 이 분은 상습 가스라이터였습니다. 신입 공무원 분들, 누군가 옆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조심하세요.)


하지만 맡은 일 열심히 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다 보니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여럿 생기니 회사에 가는 스트레스가 훨씬 덜어지더라구요. 어딜 가든 일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라던데, 제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쌓아 놓은 인간관계 때문이라도 공무원을 그만둘 이유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세 번째는 비경쟁적인 분위기입니다. 이것도 사실 부처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내부 경쟁이 치열해서 민간 회사보다 더 삭막한 부처도 더러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부처를 선택할 때 개인이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제가 있는 부처는 중간 정도의 업무 강도와 인지도를 갖고 있는 곳인데요, 이렇게 평균적인 부처라고 했을 때, 아무래도 민간보다는 경쟁의 강도가 낮습니다.


공공 업무라는 것이 투입과 산출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승진이나 성과급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보다는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꺾어야 내가 올라간다'는 분위기는 많이 없습니다. 고위직 승진 때가 되면 또 모르겠지만, 실무자에서 과장급 정도까지는 때가 되면 올라간다는 분위기입니다. 설령 경쟁에서 밀려난다 해도 정년 보장이 된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지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시험 준비생 시절까지 항상 삭막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 와서 그런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옆의 동기를 제 경쟁 상대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일할 동반자로 인식할 수 있는 게 저에게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어차피 그만두면 갈 데도 없으니까 정신승리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요새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9시간 이상을 투자해서 공무원을 할 이유가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저는 아직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발버둥을 쳐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지요. 그때 공직을 떠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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