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공직 사회에서 요새 말하는 MZ스러운 MZ 공무원은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후배가 꽤 들어온 편인데요, 많은 분들이 상사가 일을 많이 시키면 야근해서라도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드렛일도 맡아 하시더라구요.
직업으로서 공무원을 택하는 분들의 성향이 대체로 순응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가끔은 미디어에 나오는 MZ 신입이 들어오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5년, 10년 단위로 가면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지점은 있습니다. 일단 10년 이상 근무하신 선배 공무원들을 보면 조직에 대한 마인드가 저희 세대와는 다른 게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의 삶에서 '조직에서의 인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달까요. 제 관점에서는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후배님들에게 물어보면 부처 선택을 할 때 고려하는 요소들 중에 워라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저는 나름대로 워라밸이 지켜진다고 알려진 부처를 선택한 편인데요, 그럼에도 워라밸을 얻기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초보 공무원 시절에는 마이크로매니징과 일 벌이기가 취미인 상사를 만나서,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아서, 때로는 일에 너무 몰두해서 업무시간도 길었고 집에 와서도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적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구요.
업무에 조금 적응이 되고 자신감도 붙은 3년차 정도가 되어서야 일 외의 영역을 개발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운동 동호회에 가입해서 운동도 해 보고, 영어공부를 하기도 했고, 책도 이것저것 읽었던 것 같네요.
초년차 때는 '낮에 못하면 야근해야지 뭐' 했던 걸 요새는 '어떻게 해서라도 6시 전에 끝내고 가자'는 마인드로 바뀌었습니다.
워라밸을 찾아가는 과정이 외줄타기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균형을 맞추기가 참 어렵고, 한 쪽으로 쏠리기가 쉽더라구요. 일이 쏟아질 땐 한없이 바쁘고, 정말 가끔은 한가해서 심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심심한 것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더라구요.
그래도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 가고 있다고 느끼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워라밸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서 부서의 평균 퇴근 시간이 달라지기도 하죠.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무리한 요구는 적당히 걸러 듣고, 필요한 부분만 집중해서 대응하는 등의 요령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초년차 때, 상사가 하도 무리한 요구를 하길래 참다 참다 폭발해서 밤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상사를 비난하는 어조는 아니었고, 제가 이렇게 힘들고 한계에 부딪혀서 더는 못하겠다 하는 내용이었죠. 생각 외로 다음날 상사의 사과와 함께 잘 지내보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3년차 이후로는 업무로 인정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강약조절을 하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제가 부서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휴가나 유연근무를 쓰는 게 예전처럼 눈치보이지 않더라구요.
워라밸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는 일에 인풋을 쏟아서, 업무에 자신감을 얻는 것도 중요하단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주변 눈치 안 보는 '마이웨이' 스타일이시라면 처음부터 워라밸을 잘 찾으실 수 있으실 것이지만, 공무원이 되신 분들 중에 이런 스타일은 드물더라구요)
'라이프' 측면에 대해서도, 단순히 시간이 많다고 찾아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집중해서 일을 빨리 끝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했습니다. 가끔 일이 없는데도 집에 안 가시고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아무리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 한들, work를 제외한 life가 얼마나 빈약하면 사무실에서 시간을 흘려보내실까 안타깝기도 했습니다(초보 공무원 시절 저도 그랬으니 말이죠).
저만의 '라이프'를 챙기기로 한 다음부턴 취미를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도 했는데, 최근에 관심이 생긴 건 '나만의 콘텐츠 만들기'입니다.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하다가 생산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새로운 보람과 재미가 있네요.
얼마 전에 회사에서 친한 후배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제게 보여줬습니다. 워낙에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친구라, 포스팅도 감성 가득 재미있게 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정말 인상깊었던 건 그 친구가 근 1년간 하루에 한 개씩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항상 일이 많고 바쁘다는 걸 알고 있는데, 바쁜 일과를 끝내고 집에 가서 매일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니, 제겐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브런치 합격만 해 두고 글 올리는 것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최근에 열심히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이 친구 덕분이라고 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