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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Dec 29. 2022

MZ세대 공무원이 존경하는 동료들 이야기

배우고 닮고 싶은 나의 동료들

몇 년 전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직에 들어와서, 사회생활 경험이란 것을 거의 해 보지 않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험 준비를 일찍 시작해서 아르바이트나 동아리를 길게 해 본 경험도 없었죠.


그래서인지 처음 접한 사회생활에 많이 서툴렀습니다.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들은 날에는 회사에서 몰래 운 적도 있었고, 갑자기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 부담스럽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공직에 들어와서 스스로가 사회인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일을 시작하기 전 제 모습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제 모습이 더 좋기도 하구요.


제가 예전보다 좀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면, 그건 공직에서 만난 좋은 분들의 모습을 조금씩 닮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닮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해 준 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첫번째로 A사무관님에게서는 '자부심'이나 '꼿꼿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배웠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A사무관님은 제 옆과에 계시던 분이었어요. 당시 저희 과장님이던 B과장님은 국 총괄과 과장이면서 권위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데요, 국장님과도 친해서 B과장님의 뜻이 곧 국장님의 뜻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떤 사업의 이슈 때문에 옆과와 저희 과가 얽힐 일이 있었는데, B과장님과 A사무관님의 뜻이 충돌했습니다. B과장님은 A사무관님을 불러다가 질책을 하면서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승진에 불리하고'를 운운하며 인신공격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A사무관님은 끝까지 '지금 당장 편하게 넘어가자고 당신 말을 들을 수는 없다'는 뜻을 아주 예의바르게 전달하시더라구요.


제 짧은 경험으로 볼 때도 A사무관님의 판단이 맞았습니다. 다만 A사무관님의 주장은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방향이었고, B과장님의 주장은 단기적으로 성과가 보이는 방향이었죠. 저는 내심 A사무관님이 뜻을 꺾지 않기를 응원했고, 거의 한 달간의 공방이 이어진 끝에 결국 실장님의 중재로 A사무관님의 뜻대로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제가 들은 A사무관님에 대한 B과장님의 폭언만 해도 수도 없었는데, 꿋꿋하게 뜻을 굽히지 않는 A사무관님을 보면서 경외감마저 들더군요. 저는 사실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상사의 지시가  틀린 것 같아도 쉽게 반박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때 A사무관님의 모습은 공직 생활이 끝날 때까지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C주무관님에게는 '불쾌함을 우아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C주무관님은 평소에 아주 신사적인 분이었는데요, 어느날 회의에 참석했을 때 상대측에서 저희 자리 배치를 부적절하게 했습니다. 주최측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석하는 자리였는데, 조금 구석자리에 배치를 해 놓았더라구요. 초보 공무원이었던 저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앉았습니다.

그러자 C주무관님은 회의가 시작 전에 주최측 담당자에게 자리 배치가 부적절하다며 굉장히 불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최측 담당자도 잘못된 점을 알았는지, 급히 자리 배치를 바꿔서 앉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직 사회에서는 '급을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더라구요. 저나 저희 기관이 받을 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C주무관님처럼 항의의 뜻을 분명히 전달해야겠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불쾌함을 표현하는 일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C주무관님의 모습을 보니 전혀 실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면 저희 기관의 위상에 실례가 되는 것이었겠죠.


저는 예전에 일상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바로 반격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성격이었는데, C주무관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당한 상황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불쾌감을 표시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단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D사무관님에게는 '진정성, 따뜻함, 타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초보 공무원 시절 상사 때문에 굉장히 힘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구요. 이때 D사무관님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주시면서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을 거다. OOO는 능력이 충분하다. 날개를 펼 날이 올 거다.'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힘들어서 찾아갈 때마다 진심을 담아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때 저는 힘들어서 휴직도 고려할 정도였는데, 옆에서 지지해 주시던 D사무관님 덕분에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지지 않고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사무관님에게는 '한다면 하는' 실행력을 배웠습니다.

저는 어떤 동호회에 관심이 생겨도 가입을 할까 말까 한참 망설이는데, E사무관님은 일단 가입 신청서부터 쓰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바쁜 와중에도 E사무관님은 운동도 여러 가지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동호회도 하고, 블로그에 글도 올리는 등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점이 닮고 싶어서 요새는 새로운 걸 하고 싶을 때 일단 시작해보는 편입니다.




K주무관님은 '동료와 상부상조하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행사 준비로 매우 바빴던 적이 있었는데, 출장보고서를 쓰는 일과 병행했습니다. 출장보고서의 분량이 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이라 부담스러워서 조금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출장을 다녀왔던 K주무관님께서 '지금 좀 여유가 있어서 초안만 대강 작성해 봤다'며 보고서를 주시더라구요. 뼈대는 다 작성되어 있어서 완성하는 데까지 얼마 안 걸렸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업무분장상 K주무관님은 출장의 다른 파트를 맡으셨고, 이미 많은 부분에 기여하셔서 보고서는 손댈 필요가 없는데도 순전히 호의로 도와주신 거였죠.


그래서 저도 다음부터는 제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지금 누가 바쁜지 살펴보고 도와 드리려고 하는 편입니다. '일을 도와주다가 나한테 넘어오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저는 누군가를 도와줄 때 '사람을 봐 가면서 도와주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료들을 보면 남의 일까지 내가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일은 잘 하되 다른 사람의 일은 손대지 않는 사람이 있고, 내 일까지 남에게 떠넘기려는 얌체족들도 있습니다. 이럴때 첫번째 유형의 분들(E주무관님)은 도와 드려도 절대 자신의 일을 더 넘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나중에 더 크게 저를 다시 도와주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위키드'에 'For Good'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제가 참 좋아하고 닮고 싶어지는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뮤지컬 위키드 포스터(출처 : 위키피디아)


궁금하시다면 영상으로 들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한국어, 영어 버전 가사가 조금씩 다른데 둘 다 매력이 있어요.

한국어 버전 : 정선아 손승연 - For Good (뮤지컬 위키드 WICKED) / 퀘스천마크 - YouTube

영어 버전 : https://youtu.be/Y8YMfgu92hQ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거라


사람들은 운명을 찾아내어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겨서 힘을 준대


성장할 수 있도록


어제와 다른 나의 인생은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널 만났기에


태양에게 이끌리는 작은 혜성처럼


바위를 만나 휘도는 시냇물처럼


너라는 중력이 손을 내밀어


난 너로 인하여 달라졌어, 내가


I've heard it said,


That people come into our lives


For a reason


Bringing something we must learn.


And we are led to those


Who help us most to grow if we let them.


And we help them in return.


Well, I don't know if I believe that's true


But I know I'm who I am today


Because I knew you.



Like a comet pulled from orbit


As it passes the sun,


Like a stream that meets a boulder


Halfway through the wood.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But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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