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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선씨 Jul 23. 2023

밤 12시에 미역국을 끓였어

나의 시스터에게

 36살의 결혼 37살의 출산. 그리고 백일이 지난 너의 전화를 듣고 바쁜 일상속에서도 나는 네생각이 떠나질 않았어. 어쩜 이렇게도 너와 나의 삶이 닮았을까저 끝없는 패배감과 무기력한 억울함은 어디서 솟아나고는 할까 궁금해. 이러한 날에도 나는 다음날 나의 삶을 그 다음날의 나의 일을 나의 가족을 생각하며 바쁜 하루하루들을 보냈어. 허전한 마음이 들어 빠진게 무엇인지 생각하다 생각만으로 그친 장보기가 생각났지. 그게 밤 11시였지.  한살림까지 가는 거리는 멀고, 아이들을 데리고 장을 보러가는건 힘들거 같고 어쩌다가 그냥 장보기를 포기했는데 내일 나의 첫 딸의 생일이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는데 고기를 안산거지 그냥 점심에 어린이집에서 미역국을 줄거니 그냥 지나치자 싶다가도 갈팡지팡.  알수없는 미안한 죄책감들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설거지를 마치며 미역을 불렸어.


 가장 좋은것으로 주고 싶어 소고기 양지를 사서 끓이려고 했는데 말야. 어떻게 해야하나..


어린시절 아들 딸 딸. 삼남매의 중간에 태어난 나는 생일날 오빠에게 소고기미역국을 나와 여동생에겐 북어미역국을 받으며 살았어 (물론 너는 투쟁?하여 소고기미역국을 얻어먹었지만) 나는 도통 말을 뱉지 않고 순순히 북어 미역국을 받았지. 나는 북어미역국이 싫어. 여전히 말야.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것도 맛나고 감사하다 생각하지만, 나의 딸에겐 소고기 양지에 유기인증 미역에 귀하게 정성껏 끓인 미역국은 당연한거라 믿었지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던거야.

 그런데, 나는 이제 미안해 하기를 멈추기로 했어.

소고기양지가 아니어도 나는 맛나고 귀하게 미역국을 끓일 자신이 이제 생겼고, 양지 소고기를 못 사러갈 만큼 일상을 바쁘게 살았거든 그러니 나는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어.

밤12시에 불린 미역을 마늘과 참기름을 둘러 조금 볶고 국간장도 액젓도 조금 넣어 간하고 다시마 우린 육수와 물을 넣고 한시간을 가까이 끓인다음 들깨를 넣었어. 이정도면 너를 낳은 나의 첫 날의 미역국이 다시 이것과 같다해도 풍성할 것 같은 미역국으로 좋은거지.


20대를 지나면서 스스로 책임지는 여자어른이라는 역할을 따라 늘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성과를 내야하고 성공을 해야하는 그 무게감은 30대의 연애 결혼 엄마의 역할 앞에서는 더욱 무거워져만 가고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숨고 싶은 우울감에 메달리게 했어. 많은 이들이 공감은 해주되 짐을 나눠져 주는 이가 없었지. (어쩜 없었다라고 느낄 만큼의 나의 상태라고 생각도 되지만)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많이 울고 서러워하고 원망하고 막막해했어. 그걸 너와 나는 똑같이 겪고 있으니 나의 마음이 아팠다. 결국은 통과해야한다는 당위성은 사실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말 같다 생각해서 말도 못하겠어.


가장 필요한 건 너에게 쉴 수 있는 시간과 너 스스로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영혼의 책이나 음악 같은것, 술 한잔을 나누며 현재의 두려움이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육아엄마터널을 통과할 처음과 끝에 함께 해준다는 따뜻한 눈빛과 손길일텐데말야.


나는 마음으로 너를 생각하며 미역국을 끓였어.


이 미역국은 나의 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위한 국이기도해. 그래야 너에게 나의 마음이 가닿을 거라 생각했거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미역국을 열심히 끓였어.

내가 누구이고 내 자신이 어떤걸 원하는지 늘 발견해가는 동력으로 미역국은 내일아침에 나의 딸에게 나의 남편에게 나의 아들에게 줄거야. 물론 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살찌고 행복해진다는 건 내 만족이다.


그러니 지현…………..


아기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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