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English.’ 타령의 기원
학교에서 잠만 자는 아이.
행복하지 않은 아이.
학교에서 우리 아이는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아이의 은밀한 학교생활에 대해 알게 된 후 우리 부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마음 같아선 전용 침대라는 교실 소파를 몰래 훔쳐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체 왜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지 물었지만 녀석은 꽤 당당했다.
“I hate Englinsh!”
(나는 영어가 싫어욧!)
아홉 살 집착남이 처음으로 홀로 깨우친 영어 문장이었다.
국제학교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영어가 늘긴 늘었나 보다.
그 결실은 저 짤막한 문장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영어를 증오하기 위해 영어로 말해야 하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놀라움도 잠시, 그의 본격적인 ‘I hate English.’ 타령이 시작됐다.
첫 번째 영어학원에서 퇴짜를 맞은 후, 우리는 다시 여러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레벨테스트가 시작되면 아이는 외쳤다.
“I hate English!”
“Why don’t you like English?”
(왜 영어가 싫어?_학원 관계자)
“I hate English!”
“What do you like?”
(그러면 어떤 걸 좋아하니?)
“I hate English!”
녀석은 마치 늘 “나는 ~~가 싫어” 라는 대사만 내뱉던 투덜이 스머프로 거듭난 듯했다.
영어로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I hate English!”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당연하게 아이는 레벨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학원에서는 대부분 이슈믹(국제학교)에 합격한 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급기야 영어를 증오하는 마음은 행동으로 표출됐다.
어렵게 모신 한국인 영어 과외선생님과의 첫 시범수업 때였다.
레벨테스트를 위해 거듭 교재를 읽어보라는 권유에 아이는 교재를 책상 아래로 밀어버렸다.
한국인 선생님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떠나셨다.
공부할 자세부터 배우고 오라는 말에 내가 뺨을 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아이를 혼내고 다그칠수록 ‘I hate English!’ 타령은 점점 더 거세졌다.
마치 ’시장에 가면 무엇이 있나, 블라블라’ 나열하고 암기하는 게임 같았다.
‘I hate + 영어 + 화내는 엄마 아빠 + 영어로만 이야기하는 학교 + 그냥 베트남’.
분노의 대상만 분열하듯 끊임없이 늘어났다.
학교에서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홉 살 집착남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 무렵 집착남은 잠을 자는 대신 ‘I hate English’ 타령을 하며 낙서만 했다고 한다.
수업을 방해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교장실로 보내졌는데 집착남은 단골손님이었던 듯했다.
어느 날 아빠가 학교에 갔을 때 낯선 선생님이 유난히 우리 아이를 보며 반가워했단다.
양손을 번쩍 들고 좌우로 흔들며 아이를 이름을 크게 외쳤다는 선생님.
당연히 담임선생님이라고 생각해 남편은 달려가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분은 바로 교장선생님이셨다.
뻔질나게 교장실을 드나들던 집착남은 교장선생님의 애제자가 되었다.
방송작가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그 무렵 아홉 살 집착남은 ‘금쪽이’로 손색없었다.
당장 오은영 박사를 찾아가야 할 위기감이 들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남편은 기러기 역할을 바꿔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아이를 한국에 되돌려 보내고 남편이 홀로 베트남을 오가며 기러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 절차까지 알아봤지만 아이를 돌려보낼 방법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더 끔찍한 건 그 넘에 ‘I hate English’ 타령만 듣다 휴가가 끝나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혼돈을 뒤로하고 나는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I hate English, too!!!”
(나도 영어가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