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제학교에서의 긴급호출
새들도 털갈이를 한다.
생존을 위해 더 튼튼한 깃털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털갈이를 하는 동안 새들은 날아오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더 강해지기 위해 가장 나약해지는 시간,
그 시간을 ‘털갈이 이클립스’라고 부른다.
날지 못하는 새는 텅 빈 시간을 보내듯 숨죽여 기다릴 뿐이다.
멋진 새깃이 자라날 때까지.
영어학원에 이어 학교에서도 긴급호출이 연달아 이어졌다.
학교에서는 어머님, 아버님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덜컥, 아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영어울렁증도 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국제학교에는 통역사 역할을 하는 관계자가 상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에는 파란 눈의 담임선생님과 보조교사, 영어보조 선생님이 함께했다.
어색한 첫인사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라, 는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때 통역을 부탁하기로 하고 면담이 시작됐다.
이미 학원에서 처절한 생존싸움을 목격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잠을 늦게 자나요?“_담임선생님
“보통 10시에는 잠자리에 드는데요. 그렇게 늦게 자는 편은 아닙니다.”
“더 일찍 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8시쯤?
아이가 학교에 오면 소파에서 잠만 자요.“
“네??? 잠만 잔다고요?“
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수업을 안 듣고 딴청을 부리는 게 아니라 잠만 잔다니.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우리 부부가 기함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기 때부터 유순했던 아홉 살 집착남은 딱 한 가지에서 유독 애를 먹였다.
바로 잠..잠…잠!!!이다.
낮에 잠들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는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잠투정도 없이 그냥 낮잠을 안 잤다.
어린이집에서도 낮잠시간에 홀로 깨어있기 일쑤.
그런데 정작 학교에서는 잠만 잔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마침 아이의 교실은 책걸상 대신 푹신한 카펫 위에 커다란 소파만 두 개 놓여 있었다.
아이가 누워도 될 법한 큼직한 소파는 눈으로만 봐도 뒹굴고 싶게 생겼다.
그 소파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아이의 고정 침대라고 했다.
충격으로 말을 잊지 못하는 우리 부부에게 선생님은 다시 친절하게 아이의 일과를 설명해 주셨다.
“8시에 등교하면 소파에 누워요. 그리고 잠들어요.”
“그냥 자는 척하는 게 아니라요?“
“아닙니다. 정말 곤하게 자고 있어요.
11시 반 점심시간이 되면 깨어납니다.
밥을 먹고 나면 영어 보충수업 교실로 가서 따로 수업을 받습니다.
그때도 무척 피곤해 보여요.“
그냥 교실에서는 쭉 잔다는 말씀.
그러니까 아홉 살 집착남은 전날 밤 10시부터 잠들어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쭉 주무신다고 했다.
등교를 준비하는 한 시간을 제외한 13시간을 자는 셈이었다.
적어도 13시간을 자야 하는 아이니까 더 일찍 자야 한다는 게 선생님들의 의견이었다.
와중에 이 모든 내용은 영어로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정방폭포 아래, 정수리에 폭포수가 쏟아지듯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갇혀 버린 아이
파란 눈의 담임선생님은 나를 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이가 엄마의 일을 무척 자랑스러워해요.
하지만 당신의 아이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요."
주책맞게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평소 눈물이 없다고 자부했는데 참을 새도 없이 코피가 터진 것처럼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이미 학원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
무척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 맞아도 아프다.
예상보다 더 세게 맞으면 서럽기까지 하다.
아프고 서러웠던 것 같다.
단지 내 욕심을 위해 기러기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애써 가슴 깊이 묻어둔 감정을 툭 건드리자 그동안 모른척한 덩어리가 투툭 터져 나온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놓고 주저앉고 싶었다.
국제학교에 합격했다며 얼사안고 외식했던 게 엊그제인데 합격은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었다.
막상 학교에 간 아이는 들리지 않고 마음껏 말할 수도 없는 세상에 갇혀버린 듯했다.
새들에게 ‘털갈이 이클립스’라고 불리는 그 텅 빈 시간이 내 아이에게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