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도약과 주저앉은 아기새

베트남 영어학원에서의 긴급호출

by 밤이 키운 아이

쿵.탕.텅.

흰뺨기러기 새끼는 절벽에서 떨어지며 모난 바위에 수차례 부딪히기도 한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부화 직후 새끼들의 뼈가 매우 유연하기 때문이다.

단 며칠 동안 뼈가 굳기 전, 새끼들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야 한다.

다시 말해 흰뺨기러기 새끼에게는 겁먹고 주저앉을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초대


매일 밤 아이가 잠에 들기 전, 영상통화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아홉 살 집착남은 마치 사춘기가 찾아온 것처럼 급격히 말 수가 줄기 시작했다.

학교와 학원 생활에 대해 물어도 늘 똑같다는 대답뿐.

그 침묵에 대한 속사정은 두 번째 비행에서야 알 수 있었다.

휴가를 맞아 호찌민에 날아오자마자 학원에서 호출이 이어졌다.


“많이 피곤하시죠, oo 어머니.

한 번 학원에 오셨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학원 수업을 참관하라는 것.

마침 아이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했던 터라 기꺼이 나는 초대(?)에 응했다.

학원에 도착한 아홉 살 집착남은 익숙하게 정규교실이 아닌, 텅 빈 방으로 향했다.

사방이 유리벽으로 돼있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방이었다.

주로 자습이나 숙제를 남아서 하는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정규수업을 들을 실력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맞춤형 과외를 받는 듯했다.

잠시 후 흰 셔츠의 단추를 여미며 도착한 원어민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분 뒤, 나는 초대(?)의 의미를 깨달았다.



유리벽에 갇힌 아이

아이는 점점 선생님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필 의자에는 바퀴가 달려있었는데 아이는 발을 구르며 조금씩 책상에서 떨어졌다.

아이가 멀어지면 선생님은 당기고, 아이가 발을 구르면 또다시 당기고.

투명한 유리의 방이라 사제 간의 실랑이는 더 적나라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벗어나려는 아이.

애써 달래며 의자를 끌어오는 선생님.

하얗던 원어민 선생님의 얼굴은 의자와 함께 아이를 당길 때마다 실시간으로 붉어졌다.


결국 선생님은 밖에 앉아 있는 나를 지긋이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열을 식히는 듯했다.

아이는 그러한 선생님의 반응에도 어떠한 표정의 변화 없이 바퀴 달린 의자를 끌고 유리 앞으로 다가왔다.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이는 그렇게 마주했다.

이윽고 품에 안기려는 아이처럼 아홉 살 아이는 차가운 유리벽에 얼굴을 문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책을 덮었다.


한국에 있을 당시 아이는 영어를 제외하고는 학교 선생님들께 늘 칭찬만 들었더랬다.

다른 교과목에 대한 사교육은 시키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적어도 태도로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수업태도에 대한 당황스러움, 다음에는 선생님에 대한 송구스러움.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계속되자 화도 치밀었다.

시시각각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그 순간, 유리벽에 매달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힐끔.

화난 표정의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찰나, 아이의 눈빛에서 전해진 건 고통이었다.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눈물이 울컥했다.

영어가 뭐라고.


결국 나는 유리의 방에서 아이를 꺼냈다.

원어민 선생님께는 그저 ‘Sorry…’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아이는 학원에서 잘렸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도약한 흰뺨기러기 아기새는 절벽 중턱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남은 휴가는 단 일주일.

그런데, 또다시 각종 교육채팅방을 기욱거리던 나에게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이번엔 학교였다.

설마…

눈앞에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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