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헤어짐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조류학자와 철학작가가 함께 써 내려간 이 책은 평소 지나쳤던 다양한 새의 일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끔 하고 있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새는 바로 흰눈썹물떼새였다.
흔히 새들의 사랑이라 함은 화려한 털을 뽐내며 구애하는 수컷과 수수한 암컷의 만남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화려한 벼슬을 가진 수탉도 그러하거니와 공작새의 화려한 꽁지깃도 오롯이 수컷의 몫이 아니던가.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거무튀튀한 보호색을 지닌 암컷은 대부분 알을 낳고 홀로 둥지를 지킨다.
알이 부화한 후에도 독립할 때까지 암컷은 줄줄이 새끼들을 달고 다니며 지켜낸다.
대부분 암컷 새들은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상징이다.
그런데 심봉사도 울고 가는 새들이 있다.
물가에서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 다니며 서식하는 섭금류이다.
그중에서도 북극권에 사는 흰눈썹물떼새는 사랑도, 육아도 남다르다.
수컷을 선택하는 것도 암컷, 구애를 하는 것도 암컷이다.
기껏 알을 낳은 뒤엔 훌쩍 떠나버린다.
그러면 남은 알들은 누가 품고 키우냐의 문제가 남는데, 바로 아빠새다.
수컷 흰눈썹물떼새는 약 3주간 알을 품고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날 때까지 양육을 도맡는다.
아마도 생존에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한 것이리라.
내가 기러기 엄마를 선택한 순간부터 남편은 자연스럽게 흰눈썹물떼새가 되어야 했다.
수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어느덧 우리에게 첫 번째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우리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한 달 동안 호찌민에 있는 호텔을 전전하며 집을 구하고 마침내 이사를 마쳤다.
사실 학교 고민에 비하면 이사는 거의 전임자의 사례를 따르기 때문에 수월했다.
그리고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의 출근 날짜가 다가왔다.
첫 번째 이별이었다.
카레, 짜장, 김치찌개, 하이라이스.
5주간 예정된 이별을 위해 냉동고에서 차곡차곡 음식이 쌓여갔다.
만들고 얼리고, 만들고 얼리고.
영유아 시기 이유식을 준비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한 끼 정도는 집밥을 먹이자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삼시세끼 중 나머지는 어쩌란 말인가.
일단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저녁은 맛집탐방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처음 단둘이 남은 부자는 신나게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곧 질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극히 내성적이었던 남편은 아이와 살아남기 위한 생존언어 하나를 터득했다.
“혹시 한국 분이신가요?”
정 많은 한국인 이웃들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홉 살 아이의 사연을 지나치지 못했다.
묻지 않아도 하나 둘, 그야말로 고오~급 정보들을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5주 뒤, 휴가를 맞아 돌아온 호찌민 집의 냉장고는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 차있었다.
우렁각시라도 생겼단 말인가.
베트남에는 2023년 기준 약 18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거주하는데, 이곳 호찌민에만 약 9만여 명의 교민이 머물고 있다.
덕분에 이곳 깨톡 오픈 채팅방에는 수많은 반찬가게가 매일 수십여 가지의 반찬 메뉴를 판매한다고 했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일괄 배송하는 시스템.
물론 우리는 이런 미식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했다.
교육 등 생활전반에 대한 정보는 주로 ‘베트남 맘 모여라(베.맘.모.)’ 온라인 카페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반찬 채팅방은 지인이 직접 초대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젖동냥을 다니는 심봉사처럼 아버지는 여기저기 정보동냥을 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아이는 배를 곯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흰눈썹물떼새처럼 남편도 진화한 것이리라.
혹시 모를 또 다른 예비 흰눈썹물떼새를 위해 한국인의 정을 통해 얻은 반찬방 정보를 공유해 본다.
(순서와 인기도는 관련이 없으며 적어도 1회 이상 주문해 먹어본 곳입니다.)
*각종 국물류와 밑반찬 밀키트
-ID: yori3901 (소중한 식탁)
-ID: sochan002 (소담반찬)
-ID: ciel2017 (씨엘)
*해산물 주문과 회, 요리 주문
-096.703.7807 (꽃게아저씨, ‘장인이 어부’라는 식당 운영 중)
*기타 다양한 식재료와 과일, 음식 판매
-ID: hoang111 (황금방앗간)
-포메인 (방 이름이 포메인인데 군고구마가 특히 맛있다. 지인이 가입돼 있다면 초대를 부탁해 보자)
*고기류
-비나후레쉬 (지인이 있다면 초대를 부탁해 보자, 또는 Grab 어플로 배달 가능)
*매일 만든 두부와 각종 반찬류
-ID: kongma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