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엄마는 자유부인이라고 누가 그래!!!

by 밤이 키운 아이


가족들을 베트남에 보낸 후 나는 회사 코앞에 작은 오피스텔 원룸을 얻었다.

휴가 기간 동안 베트남에 다녀오면 주변에서는 종종 이렇게 안부를 전하곤 했다.


“어이~ 자유부인, 얼굴이 환해졌네.“

“자유부인, 막상 혼자 지내니까 좋지?”

“자유부인, 군식구 없다고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한껏 베트남에서 학교와 학원으로부터 호출을 당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기러기 부인’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선배 부인들처럼 진정 자유로운가?



부인 vs 기러기 엄마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 위로 다부진 말 한 마리가 콧김을 뿜으며 달려간다.

그 위엔 안장도 없이, 입은 건지 모를 옷자락을 너울너울 휘날리는 여인이 타고 있다.

윤기가 좌르르 도는 말의 갈기가 휘날릴 때마다 말이 나인지, 내가 말인지.

영화 <애마부인>의 유명한 한 장면이다.

맹세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그 장면은 기억에 남아있다.

애마부인은 1980년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자고로 더 앞선 시대를 풍미한 부인이 계셨다.

1956년 서울관객 15만여 명을 동원하며 그해 국산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자유부인>이다.

영화 포스터 문구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이냐, 허영이냐, 운명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성도덕 어쩌고…’


고작 ‘기러기 엄마’인 나는 사랑도, 허영도, 방황하는 성도덕 어쩌고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자유부인이 된 걸까?

물론 밥과 빨래 등 워킹맘에게 기본 옵션처럼 따라붙는 집안일에 대해서는 다소 자유로워졌다.

고작 집 앞에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데 패션쇼를 할 것도 아니고 빨래는 3분의 1로 당연히 줄었다.

또 당초 자취방에는 밥솥이라는 물건도 들여놓지 않았다.

덕분에 요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마라탕과 탕후루의 환상적인 조합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솔직히 처음 한두 달은 누구의 눈치도 않고 마음껏 야근하며 빨래탑도 쌓아봤다.

그런 의미의 방종도 허락된다면 나는 자유부인이 맞았다.


그러나 기존 부인 선배님들에게는 없는 딱 한 가지가 없었으니 바로 ‘휴식’이다.

애마부인만 하더라도 헐벗은 채 푸른 초원을 질주하다 보면 절로 여러모로 시원하지 않겠는가.

서양에서도 각종 육감적인 부인 선배들이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그분들은 귀족이었다.

당연히 나처럼 죽도록 야근도 안 했을 것이다.


21세기의 기러기 부인은 그저 일일일+ 야근을 죽도록 하고 휴가 땐 둥지로 날아가야 했다.

그곳에서는 각종 반찬 만들기와 교육, 생활 전반에 걸친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미국이었다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매달 가는 걸 포기했겠지만 베트남은 아니었다.

5시간 남짓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해 가는 시간이 아니던가.

아홉 살 집착남은 떨어져 있는 기간만큼 사랑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우당탕탕 녀석과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뒹굴고 나서야 나는 출근 하루 전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출근 전야는 그야말로 침대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그땐 자유고 뭐고 그냥 ‘침대부인’이다.

그리고 고독이 찾아온다.

해가 뜨면 이 쳇바퀴 같은 비행은 반복된다.


먼 훗날 지인들은 나에게 ‘자유부인’이란 멋들어진 호칭 대신 이런 말을 더 자주 했다.


“승무원도 아니고 뭔 비행기를 그렇게 자주 타? 안 피곤해?”

“벌써 베트남에 갔어? 완전 아이돌 스케줄이야.”


누려보지도 못한 ‘자유부인’이란 호칭은 정말 억울할 뿐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피곤에 찌든 ‘기러기 엄마’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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